▲ 학교운영을 둘러싸고 학교측과 교사들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부천정명여자산업고 정문.

학교측의 일방적인 전보발령이 부당하다며 항의하던 전교조 교사가 격분 끝에 자신의 혀를 깨물어 전치2주의 상처를 입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각본에 짜여진 행위"라고 비난하자 전교조 측은 "교사의 명예를 훼손한 발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남편과 부인이 각각 재단이사장과 교장을 맡는 등 그간 비민주적 학교운영이 사태악화를 불러왔다"며 단식철야 농성 등을 강행할 태세이다. 반면 학교측은 "교사들의 단체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어서 사태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경기도 부천 소재 정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이하 정명산고)의 박청래(48·상업) 교사가 13일 오전 동료조합원 류동구(34·전교조 경기도 부천사립학교위원장) 교사에 대한 인사전보가 부당하다고 항의하던 도중 교감의 욕설에 격분해 혀를 깨물어 실신한 뒤 부천 순천향병원에 실려갔다.

"부당인사, 전교조 와해 저의" - "인사권은 교장 고유권한"

전교조 정명산고 분회 측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20분께 학교측의 인사발표에 대해 류 선생이 부당한 인사라며 항의하자 김영규(54) 교감이 "이 ××"라고 욕설, 격분한 박 교사가 "교감의 욕설은 교사를 무시한 처사"라고 외친 뒤 혀를 깨물었다는 것. 또한 항의방문한 전교조 교사들에게 이 아무개(여·56) 교장이 "짜여진 각본"이라고 말해 교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류동구 교사는 14일 "인사발표를 한 당일(13일) 바로 전에 교장실로 불러 같은 재단의 인문계인 정명고등학교로 일방적인 발령을 통보했다"며 "지난 2000년 정명고 근무 당시에도 인사발표 이틀 전에 일방적으로 정명여상(현 정명산고)으로 발령을 냈다"고 말했다.

유길준(45) 정명산고 분회장은 13일 "전교조 핵심 간부인 류 교사에 대한 일방적인 인사 전보조치는 분회를 와해시키기 위한 저의가 깔린 것"이라며 "현 사태는 수 십 년간 비민주적 학교운영이 불러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분회장은 16일부터 정시 출퇴근 농성, 23일부터는 단식철야농성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영규 교감은 14일 "류 선생이 삿대질하면서 욕을 해 나도 욕을 했고 전교조 선생들도 욕을 했다"면서 "박 선생이 이날 비전교조 교사들에게 '오늘 내가 일을 저지를 테니 가만 있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볼 때 박 선생이 혀를 깨문 것은 미리 계획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유길준 분회장은 이에 대해 "류 선생이나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교감 선생에게 나이 값하라고 항의한 적은 있지만 욕설한 적은 없다"면서 "박 선생이 혀를 깨문 게 미리 계획됐다는 교감의 주장은 민주적인 학사운영을 요구한 교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격분했다.

한편 박 교사는 13일 응급실을 찾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취재협조 의사를 눈빛으로 밝혔을 뿐 말은 하지 않았다. 유길준 분회장은 14일 "혀가 2∼3㎝ 가량 찢어져 2주일 가량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병원측이 말했다"고 전했다.

▲ 교감의 욕설은 교사 무시한 처사" 교감의 욕설에 항의하며 혀를 깨문 박청래 교사.

"학교 방해 피해 기습총회를 열어 분회 설립했다"

 학교법인 계림학원(이사장 김용창) 산하에는 실업계인 '정명산고'와 인문계인 '정명고등학교'가 있다. 계림학원 설립자인 김 이사장의 부인인 이아무개 교장은 이 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지난 2002년 교장에 취임했다. 교장이었던 박모(63·사회)교사는 평교사로 근무 중이다.

정명산고 분회는 43명의 교사들이 지난해 11월 민주적 학교운영과 교권보호를 위해 전교조 분회를 창립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교측이 학교 시설물 이용을 불허해 교무실에서 기습총회를 열었으며 또한, 학교측을 두둔하는 한 교사로부터 골프채로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조합이 결성되기 이전까지 전교조 조합원은 혀를 깨문 박청래 교사와 인사전보 대상인 류동구 선생 둘 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박 선생은 이 학교 학생성적 전산처리를 도맡아 하는 등 업무과중으로 신경성 질병을 얻었음에도 학교측이 치료 중인 박 교사에게 휴직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 전문교과(상업 등) 교사들은 학교측의 인문계 전환계획에 대해 크게 동요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 관계자가 '전교조를 탈퇴하거나 학교측에 협조한 전담교과 교사들은 정리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회유하는 등 전교조 분열에 애를 썼다고 주장했다.

홍태희(45·상업·학교운영위원) 교사는 13일 "교장이 반말하는 등 머슴 취급하며 교권을 침해했지만 재단이 무서워 비애를 삼켜야 했다"며 "교권회복과 민주적 학교운영을 위해 조합을 만들자 학교측이 전교조는 빨갱이라며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어이없어했다.

"학교 출근도 제대로 않고도 월급 챙기고 교장 승진"

김영규 교감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인사권은 학교장의 고유권한으로 지난 89년부터 '정명고'와 정기적인 인사교류가 이루어져 왔다"면서 "류 교사는 전교조 활동을 하기 위해 학교측의 정당한 인사명령을 거부했다. 전교조의 인사개입은 학교 운영권을 달라는 것"이라며 전교조 교사들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김 교감은 또한 "박 선생은 A대학병원에 신경계통으로 입원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며 학교 근무 도중 병을 얻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실업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학교가 노력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한 게 전문교과 선생들의 위기의식을 불러온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학교 이아무개 교장은 교감시절은 물론 교장에 취임한 뒤에도 출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교조 교사들은 십 여 년 동안 학교 출근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월급을 챙기고 교장에 승진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이사장이었기에 가능했다며 부당한 월급 반환을 요구했다.

류동구 교사는 "교장선생은 화, 수, 목, 토요일은 거의 등교하지 않고 부장단 회의가 있는 금요일 점심 무렵에 잠깐 출근해 회의가 끝나면 곧 바로 퇴근한다"고 밝혔다. 이 학교 2회 졸업생인 이수진(여·32) 동창회장은 14일 "현 교장선생님이 당시에는(97년) 교감선생님이었는데 학생 대다수가 교감이었는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교사들의 폭로를 뒷받침했다.

류 교사는 또한 "교장선생이 아무런 통보 없이 수업시간 도중에 교실에 들어와 '교실이 지저분하다. 학생복장이 불량하다'는 등 수업방해와 교권침해를 했다"면서 "등록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을 등교정지 시키고 등교한 학생들을 결석 처리하도록 학교측이 교사들에게 강요했다"고 비교육적인 처사를 성토했다.

유길준 분회장은 "도교육청에서 입수한 자료(2000년∼2003년)에 따르면 국고 지원금이 30억 원∼40억원 정도였던 반면 재단의 일년 전입금은 120만원∼140만원에 불과했다"면서 "교사의 한달 치 월급도 안 되는 전입금을 내고도 학교를 개인 소유물처럼 운영하는 사립재단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뿐 교육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집사람이 전교조 교사들에게 정신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김영규 교감은 교장의 출근불량에 대해 "교장선생님이 몸이 불편해 병원 신세를 많이 지기 때문에 학교를 빠지거나 약간 늦게 나온다. 그러나 학교 운영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용창(61) 이사장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집사람이 전교조 교사들에게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몸이 더 아팠다"며 잦은 결근의 책임을 전교조 교사들에게 전가했다.

김영규 교감은 교권침해 주장에 대해 "수업시간에 들어가는 것은 선생이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장학하는 것이지 교권침해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 또한 "교장과 교감이 들어가더라도 수업만 열심히 하면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것 아니냐"고 교사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다른 실업계는 성한 데가 하나도 없지만 우리 학교는 양호한 편이다"고 강조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14일 "교장이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출근하지 않은 경우에는 경고·징계 등 상응한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일단 학교장의 출근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수진 동창회장은 "2년 전 학교 증축에 필요한 의자 200석의 비용 협조를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요구해 할 수 없이 동창회비 2천만원을 기부했다"면서 "학교의 협조요구를 늦추자 한 교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졸업생들에게 동창회비를 걷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불쾌감을 털어놓았다. 이 회장은 "학교운영이 이런 정도인 줄 상상도 못했다. 힘이 약하지만 선생님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