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의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키자 법제정을 학수고대하던 전국의 유족들이 한나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특히, 한나라당의 상정보류에 분노한 유족들이 피해자 유족들의 유골을 직접 들고와 50여년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한과 분노'를 터뜨렸다.

'민간인학살 통합특별법 국회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킨 한나라당 규탄대회'에 참여한 유족 1백50여명은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민간인학살특별법을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고 폐기하려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국회회의원들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조속한 법제정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민간인학살 특별법을 상정하기로 했으나 자유시민연대 등 일부 보수단체들의 반대를 이유로 법안상정을 보류했다. 이들 보수단체들은 국회 본회의 상정에 앞서 6일 한나라당사 점거농성을 전개하며 "민간인학살 특별법이 대립과 갈등, 분열만 조상시킨다"며 통과반대입장을 피력했다.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보수단체의 당사 점거시위와 때를 맞춰 "민간인학살 특별법이 6·25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며 전격적으로 상정보류를 결정했다.

김혜숙 사무국장은 "상정보류가 된채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보수단체 반발을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에서 가해자 부분이 일제청산과 밀접히 연관되어 그들(하나라당)에게 뿌리를 건드리는 것과 마찬일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반대 당론을 결정하기 어려워 상정 보류를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추가파병동의안, 한-칠레 FTA 등 중대사안이 걸려있기 때문에 특별법이 다시 논의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17대 국회로 넘기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사무국장은 "그동안 유족분들은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면서 "한나라당의 본회의 상정 보류 소식이 전해지자 '치가 떨려 몇일 밤을 잠 못이루고 올라왔다'는 유족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경산 유족회의 경우 유골 투쟁을 벌였다. 사무국에서 유골투쟁을 제안했을때도 유족들은 모의 유골을 어떻게 거리에 내놓을 수 있는가'라며 반대를 했었다"며 "그런데 오늘은 유족들이 먼저 유골을 가지고 상경했을 정도로 매우 절박한 심정들이고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의 발언에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유족들은 "지난 2001년 9월 국회에 상정된 민간인학살 특별법은 50년간 뭍혀져 왔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학살자 및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우리 사회의 마지막 한을 풀려는 법"이라며 "이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국민대화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족들은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난 3년간의 입법과정에서 한번도 의사개진을 하지 않았던 보수단체들의 성명서 한 장을 핑계로 이번 총선에서 보수층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궁핍한 설명을 보태 자신들의 반역사적, 반인권적 실체를 드러낸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려 1백만명에 달하는 민간인 희생자들과 5백만명에 이르는 유족들이 한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국민 대통합을 이루려는지 의심스럽다"며 "한나라당이이번 16대 국회 회기내에 민간인학살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전국적인 차원에서 한나라당 후보 전원을 낙선대상으로 규정, 강력한 낙선운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족들은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당사로 진입하려 했으나 이를 제지하는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유족들은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 본회의 상정이 유보된 민간인학살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