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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
[발굴] 빼앗긴 꽃 이름 사내초(寺內草)와 화방초(花房草)
2004년 02월 13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금강초롱이라는 꽃이 있다. 여러 해 전에 화장품 광고를 통해서도 선을 보였고, 해방 이후 우표의 모델로도 자주 등장했던 예쁘장한 꽃이다. 이름 그대로 금강산 일대에 주로 자생하는 특산식물인데, 간혹 이 꽃의 이름을 달리 화방초(花房草)라고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1974년 8월 19일에 오대산 지역에서 촬영된 금강초롱의 모습이다. 이 고운 이름을 두고 오래 전 '화방초(花房草)'라는 것이 그 자리를 선점했다.
'화(花)'자가 들어있으니 꽃 이름으로는 딱 제격이라는 생각을 무심코 떠올리기 십상이겠다. 하지만 이러한 꽃 이름 하나에도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이 그 기분은 영 개운치 못하다.

알고 봤더니 '화방초'는 화방의질(花房義質, 1842-1917) 즉 '하나부사 요시카타'라는 일본인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었다. 그러니까 금강초롱의 학명(Hanabusaya asiatica, Nakai)에 그 이름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조선주재 초대일본공사였던 화방의질(花房義質) 즉 '하나부사 요시카타'는 조선식물에 대한 남달리 선구적인(?) 관심 때문에 조선의 꽃 이름에 영원히 그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대원군 시절을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마주쳤을 법한 그는 1880년 조선주재 일본공사관의 개설과 더불어 초대 공사(公使)로 부임하여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1882년까지 조선에 주재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꽃의 이름, 그것도 하필이면 조선의 꽃 이름으로 자리매김 된 것일까?

강원도 금강산의 유점사(楡岾社) 근처에 많이 자생한다는 '금강초롱'을 동경제국대학 식물원(植物園) 소속의 우치야마 토미지로(內山富次郞)가 처음 발견한 것은 1902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를 채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고, 이 '이름 모를' 조선의 꽃에다 '화방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은 한참 후인 1911년이었다.

명명자는 저명한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타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 교수였다. 그는 일찍이 조선식물의 연구에 주목하여 이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식물의 학명에 대개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러한 그가 우치야마가 채집한 도라지과(桔梗科) 식물을 관찰한 결과 새로운 속(屬)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라 규정하고 그 꽃의 이름짓기에 골몰하였는데, 마침 동경식물학회가 발행한 <식물학잡지> 1911년 4월호에는 그 과정에 대해 나카이 자신이 직접 적어놓은 글이 하나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대충 이러했다.

   
▲ 동경식물학회가 발행한 <식물학잡지>의 표지이다. 이 잡지의 1911년 4월호에는 조선에서 발견한 특산식물에 하필이면 '하나부사'의 이름을 부여한 것인지 그 경위를 적은 나카이 타케노신(中井猛之進)의 글이 남아 있다.
"나는 이 조선의 진귀한 식물에 대해 신속(新屬)을 세울 필요를 느끼고 그 명칭의 선정에 부심하였는데, 본인으로 하여금 조선식물을 연구하도록 지정하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극진한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은사 마츠무라 진조(松村任三) 교수가 이르기를….

아직 오늘날과 같이 조선의 일본에 대한 관계가 없던 일청전역(日淸戰役) 이전에 조선식물의 조사에 주목하여 그 시절 이곳의 공사였던 하나부사 자작이 손수 많은 식물을 채집하여 이를 이과대학 식물학교실에 기증했던 것에 기인하여,

그 후 식물원의 우치야마 토미지로(內山富次郞)를 두 차례나 파견하여 다시 전문적인 채취를 시도한 결과 나날이 조선의 식물조사에 등한히 했던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내가 조선식물조사의 대임을 받는 것이 되었으니

그 원인이 되는 하나부사 자작의 공은 잊혀질 수 없어, 즉 마츠무라 교수에 상의하여 하나부사야(Hanabusaya)의 이름으로 이 신발견의 세계적 진식물(珍植物)을 자작에 바쳐 길이 그 공을 보존하여 전하고 싶다."

조선의 꽃 하나는 그렇게 조선의 침탈에 앞장섰던 일본인 권세가의 몫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또 있었다. 이번에는 일본공사가 아니라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1919)가 그 주인공이었다.

   
▲ 어이없게도 '조선의 꽃'이 된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의 모습이다. 특히 왼쪽의 것은 1910년 한일합병 당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그러니까 사내초(寺內草)는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명칭이었다. 자료를 뒤져보니, 이 백합과(百合科)에 속하는 '사내초'는 달리 '조선화관(朝鮮花菅)'이라고도 하고, '평양지모(平壤知母)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식물은 또 어쩌다가 조선을 집어삼킨 거물정치인의 이름이 붙은 것일까? 다시 <식물학잡지> 1913년 10월호이다. 여기에는 그 명명자인 나카이 타케노신 교수의 글이 남아 있다.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유(敎諭) 이마이 한지로(今井半次郞)씨가 재작년 한 개의 백합과 식물을 다른 다수의 조선식물과 더불어 내게 보내 그 검정(檢定)을 원했는데, 요사이 자세히 이를 검사했더니 바로 학계 미지의 한 식물이고 또 분명히 일 신속(新屬)의 가치가 되었다.

분류학상의 위치는 백합과에 속하고 (중략)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명백히 이것과는 구별이 되었다. 조선총독부 테라우치 백작 각하는 조선식물조사의 필요한 바에 착안하여 내게 조사를 명하노니, 내가 여러 해 품어왔던 뜻이 그로 인해 단서를 잡았으며,

조선의 땅은 일만(日滿)의 사이에 끼어있으나, 그럼에도 아직 식물상 정밀의 조사가 없어 식물학상 유감이 적지 않아 내외에 제 선배가 벌써부터 이를 안타까워했으나 지금 총독각하가 이 점에 착안한 것은 동학(同學)의 가장 감복하는 바이라 즉 이에 본 식물을 각하에 바쳐 길이 각하의 공을 보존하여 전하고자 희망한다."

   
▲ 나카이 타케노신이 조선 땅에서 새로이 발견한 백합과 식물에 대해 테라우치 총독의 이름을 따 '사내초(寺內草)'라고 명명한 경위를 적어둔 <식물학잡지> 1913년 10월호의 내용이다. 물론 그 이후 나카이는 조선식물연구의 대명사가 되었다.
앞뒤의 기록을 다시 확인해 보았더니 원래 이마이 한지로가 평양 부근에서 이 백합과 식물을 채집한 것이 1911년 11월 18일의 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꽃을 전해받은 나카이는 난데없이 조선총독의 이름을 여기에다 붙여놓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때마침 식물조사계획을 후원하여 자기에게 공적을 세울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니, 새로이 발견된 조선특산식물에다 '고마운' 테라우치 총독의 이름을 따서 '사내초'라고 명명하는 것으로 그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겠다는 취지였다. 평양지모의 학명(Terauchia anemarrhenaefolia, Nakai)에는 분명 테라우치라는 명칭이 남아 있었다.

   
▲ <조선식물명휘> (1922)에 수록된 '사내초'와 '화방초'의 도판이다. 사내초는 달리 '조선화관' 또는 '평양지모'라고도 하고, 화방초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금강초롱'의 원래(?) 이름이다.
그러한 덕분인지 나카이 타케노신은 1913년 이후 조선총독부가 시행했던 식물조사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조선 전역에 걸쳐 주요 지역을 조사하는 기회를 가졌고, 그로 인해 그는 조선식물연구에 관한 한 최고의 명성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그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팔수록 조선의 꽃들은 하나씩 그 자신의 업적이 되어갔던 것이다.

'화방초'와 '사내초', 이제는 완전히 잊혀졌을 법한 이름이 되었지만, 애당초 나카이가 그렇게 한번 그 이름을 학명(學名)으로 등록해 버린 이상, 싫건 좋건 그들은 앞으로도 영원한 조선의 꽃으로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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