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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쩍 않는 세상이 1%라도 바뀔 수 있다면?
몸짓 연기만으로도 할말 다하는 연극 <마의태자>
2004년 02월 13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절규하는 왕비와 마의태자
ⓒ2004 극단창파
대학로를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머리를 지닌 한 남자가 눈빛을 빛내면서 뭔가 말하고자 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포스터를 한번 쯤 보았을 것이다. 이 포스터 속의 남자는 행위예술가로 유명한 심철종이다.

심철종은 신라 최후의 미스터리로 여겨지고 있는 마의태자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이었던 마의태자는, 경순왕이 고려의 건국자 왕건에게 항복하기로 한 결정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을 하게 되고, 결국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홀로 풀을 베어먹으며 생을 마치게 된다.

이런 마의태자가 연극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연극을 보게 되면, 아버지의 폭정에 심하게 반발감을 보인 마의태자는, 아버지를 축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직접 행동을 보여준 이는 아버지의 강탈에 의해 아버지의 여자가 된 어머니이다.

회의하고 자신 없어 하던 마의태자와는 달리 아버지를 직접 죽인 어머니는 그 다음 행동을 감행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 한다. 마의태자의 회의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몸짓 언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연극을 자세히 보게 되면, 몸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대사로 말하는 사람들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왕의 소리를 내는 오준영과 마의태자 소리를 내는 김도균과 문경태, 왕비 소리를 내는 김윤정의 표정과 대사를 주목하길 바란다. 이들은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대사로 보여주는 왕과 왕비, 마의태자의 고뇌를 박정근, 소희정, 심철종은 몸으로 보다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몸의 언어를 보고 있다보면, 영혼의 울림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몸과 말이 철저히 분리된채 다른 사람의 대사에 의해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몸이 말에 의해 억압당하고, 세뇌당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나는 힘 없는 자, 배터리가 다된 기계이며 광대올시다'라는 마의태자 소리를 내는 사람의 말에 맞추어, 심철종이 보여주는 얼굴 표정은 보는 관객들까지 함께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고뇌하게 만든다.

   
▲ 몸짓으로 말하고 있는 배우들과 대사로 말하고 있는 배우들
ⓒ2004 극단창파
그 옛날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마의태자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회의 그늘 속에서 힘겹게 살 수 밖에 없다. 현대의 마의태자를 통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한 개인이 어떠한 발버둥을 쳐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별 일 아닌 척, 전혀 모르는 사실인 척 덮어버릴 수만은 없다. 마의태자의 끊임없는 번민, 고뇌,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이상과 현실의 괴리, 생각과 행동의 괴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꿈꾸고 깨어나지만, 또다시 꿈꾸는 악몽처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어제 봤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에 대항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우리의 감겨진 눈은 서서히 뜰 수 있게 된다.

이번 연극은 관객들에게, '눈을 떠라! 각성하라!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다. 관객들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무대를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연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말이 필요없는 극을 눈 앞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극의 중간에, 관 속에 앉은 채로 대사를 하던 왕의 소리, 태자 소리, 왕비 소리가 관객들 앞으로 바짝 다가오게 되는데 이 부분 역시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강박적인 사명감을 지니는 일,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역설을 설파하고 있는 그들을 가까이서 본 관객들은 말을 한번 걸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즉, "저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세상이 정말 조금, 아주 조금도 변화지 않을까요?"라는 물음 말이다.

좋은 연극은 좋은 관객을 만날 때 빛이 난다. 좋은 관객이 되어 마의 태자를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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