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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조국 틈새서 신음한 전사
고 김남주 시인 10주기, 그리고 그의 흔적들
2004년 02월 13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네 언제라도
지금이라도 나는 벗이여 사십 년이란 내 삶의
뒤안길을 머뭇거리며 돌아보지 않고
의연하게 먼 산을 바라보며 저승의 사자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
그것이 어떤 이름의 죽음일지라도 상관없이
왜냐하면 삶과 한가지로 죽음도
스스로 기꺼이 맞이해야 할 설이고 추석이고 축제이기 때문이네
마지못해 영위되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네
억지로 가는 길은 노예의 길이네


<후략>
- 죽음에 대하여

   
▲ 고 김남주 시인
ⓒ2004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불혹의 나이에 시인은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8년 뒤 시인은 예견이나 한 듯 초연히 삶을 마감했다. 48세. 아깝고도 눈부신 나이에 고 김남주 시인은 영어(囹圄)의 세상을 영원히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 그때가 1994년 2월 13일 새벽이다.

그로부터 10년. '조국은 하나다'라고 뼈에 사무치게 외쳐대던 시인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조국은 세포분열하듯 조각나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경제는 울화가 치밀 정도로 답보하고 있다. 시인은 노래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후략>

- 함께 가자 우리 이 이 길을

시인은 생애를 일관되게 천민 자본주의와 군사독재 권력을 비판하면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사회 구성체를 바라봤다. 1973년 제4공화국이 유신을 발표하자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지하신문 <함성>, <고발>을 만들다 적발돼 고난의 길로 접어든다.

시인은 8개월간 피비린내 나는 감옥 생활에서 강요된 침묵 때문에 세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시인은 계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라는 시로 조심스럽게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1979년 남민전사건과 관련 체포돼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시인은 피를 토하듯 시를 썼다. 때때로 정련(精鍊)되지 않은 거친 활자로 민초를 밟고 서있는 권력의 교만함을 꾸짖었다. 연작 '학살'에서 보여 준 직설적 표현은 그의 일관된 저항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꾸짖음 때문이었을까. '학살의 원흉'들은 한결같이 법의 심판을 준엄하게 받지 않았는가. 그의 꾸짖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 역시 그의 투박한 칼끝에 뭉개진다.

아침 저녁으로 요즘
밥상 앞에 앉아 있노라면
텔레비전을 대하고 앉아 있노라면
후세인은 천하에 죽일 놈 살릴 놈이고
미군은 평화의 십자군
자유세계의 창과 방패이다

<중략>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전쟁과 평화를
가진 나라 가진 자의 눈으로가 아니라
억압받는 계급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제국주의와 싸우는 식민지의 모든 민중이
그대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기고
위선의 평화를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아메이카여 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

시집…남겨진 시인의 피와 살

시인은 옥중에서 수많은 시를 남겼다. 한편 한편이 시인의 피며 살점이다. 육신과 영혼을 시와 맞바꾸며 그는 울분과 저항을 시(詩)라는 활자에 담았다. 그가 없는 지금, 영원히 썩지 않을 붉은 색의 '조국은 하나다'(남풍·1988)를 비롯, '진혼가'(연구사·1984), '나의칼 나의피'(인동·1987), '솔직히 말하자'(풀빛시선21·1989), '사상의 거처'(창평시선100·1986),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1992),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비시선128·1995) 등의 시집이 남아 있다.
 
   
▲ 시인의 시를 엮은 시집들
ⓒ2004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시선집으로는 '사랑의 무기'(창작과비평사·1989),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1998), '저 창살에 햇살이1·2'(창작과비평사·1992), '옛마을을 지나며'(문학동네·1992) 등이 있다. 수필, 일기, 옥중서신 등을 모은 '시와 혁명'(나루·1991),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시 와 사회사·1986), '옥중서간집-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삼천리·1989)가 시인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이 엮은 '내가 만난 김남주'(이룸출판사·2000)가 시인을 추억하게 한다.

노래…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시인의 읊조림

시인의 노래는 민중가요 발전에 비옥한 자양분 역할을 했다. 선동성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시인의 읊조림은 수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회자되고 있으며 그는 노래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안치환은 1집 '저 창살에 햇살이'를 시작으로 매 앨범마다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담고 있다. 이런 안치환은 비정규앨범인 6.5집을 통해 시인에 대한 흠모를 한 곳에 모은다. 이른바 헌정앨범을 만든 것이다.

   
▲ 시인의 시에다 곡을 붙이기 좋아한 가수 안치환의 작곡 원고
ⓒ2004 유성호
헌정앨범에는 '똥파리와 인간', '자유', '지는 잎새 쌓이거든', '저 창살에 햇살이',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돌멩이 하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국화', '희망이 있다', '아이고! I GO!', '노래(죽창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 가을에 나는' 등이 수록돼 있다.

안치환은 앨범 에필로그에서 "어두운 시대 불꽃처럼 살다 가신 김남주 시인께, 음악적 영감과 노래의 바른 길을 깨우쳐 주신 그 분께, 어른의 눈빛이 그렇게 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그 분께, 이 음반을 바칩니다.(2000. 4)"라고 쓰고 있다.

10주기 사업…부활하라! 시인이여!

시인이 떠난 지 10년. 어느 해보다 남은 자들의 추모행사가 풍성하다. 김남주 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해남기념사업회, 광주전남민예총, 광주전남작가회의, 70동지회와 함께 '민족시인 10주기 추모행사위원회'를 만들어 ▲문학기행(김남주 문학세계를 찾아서) ▲추모문화제 ▲추모식과 시비 순례 등을 준비했다.

13일 문학기행부터 공식적인 추모행사가 시작된다. 문학기행은 서울에서 출발 1박2일 일정으로 시인의 고향집인 전남 해남 생가를 찾고 해남문화회관과 해남유스호스텔에서 시 낭송 시간을 가지면서 시인을 추모한다.

   
▲ 전남 해남에 있는 시인의 생가
ⓒ2004
14일 오후 3시 광주 5·18 기념문화관에서는 시인의 삶을 형상화한 총체극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가 공연된다. 공연에는 가수 안치환과 극단 '토박이', 놀이패 '신명' 등이 출연한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내가 생각하는 김남주의 삶과 문학'이란 주제로 시인의 문학세계를 회고한다.

15일 오전 10시에는 시인이 잠든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비엔날레 공원의 시비를 돌아본다. 김남주기념사업회는 10주기 행사를 통해 김남주상 제정, 김남주 문학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확대한다.

추모행사를 통해 시인의 목소리가 이 사회를 밝히는 불이 되었으면 한다.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었으면….

고 김남주 시인 연보

( )안은 나이.

▲ 1946 (01) : (10. 16) 전남해남군 해남읍 삼산면 봉학리 535번지에서 아버지 김봉수, 어머니 문일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964 (18) : 광주일고 입학, 입시위주의 획일적 교육제도에 반대하여 이듬해 자퇴

▲ 1969 (24) :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 반대운동에 참여,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끔. 지하신문 <함성> 제작

▲ 1973 (28) : 전국적인 반 유신투쟁을 위해 지하신문 <고지> 제작.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투옥 8개월 만에 석방됨. 전남대서 제적.

▲ 1974 (29) :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음.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잿더미' 등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 1975 (30) : 광주에서 사회과학 서점 '카프카' 개설

▲ 1977 (32) : 농민들과 함께 '해남농민회'결성. (한국 기독교 농민회의 모체). 광주에서 황석영, 최권행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개소.

▲ 1978 (33) : 상경하여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하고 남민전 전위대 전사로 활동. 수배 중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청사) 번역 출간.

▲ 1979 (34) : 남민전 조직원으로 서울에서 활동 중 구속되어 투옥됨. 이듬해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

▲ 1984 (39) : 첫시집 '진혼가'(청사) 출간.

▲ 1987 (42) 제2시집 '나의 칼 나의 피'(인동) 출간. 일본에서 시집 '농부의 밤' 일어판 출간

▲ 1988 (43) : 제3시집 '조국은 하나다'. 하이네·네루다·브레히트 시선집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출간. 12월 21일 형 집행정지로 투옥생활 9년 8개월만에 출소

▲ 1989 (44) : 1. 29 광주 문빈정사에서 박광숙과 결혼. 옥중 서한집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삼천리) 출간. 시선집 '사랑의 무기'(창작과 비평사) 출간. 제4시집 '솔직히 말하자' (풀빛) 출간.

▲ 1990 (45) : 광주항쟁 시선집 '학살'(한마당) 출간. 92년 12월까지 민족문학 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

▲ 1991 (46) : 제5시집 '사상의 거처'(창작과 비평사) 출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상' 받음. 시선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출간. 산문집 '시와 혁명'(나루) 출간. 하이네 정치 풍자시집2 '아타 트롤'(창작과 비평사) 번역 출간.

▲ 1992 (47) : 제6시집 '이 좋은 세상에' (한길사) 출간. 옥중 시선집 '저 창살에 햇살이 1·2' (창작과 비평사) 출간. 제6회 단재 문학상 수상.

▲ 1993 (48) : 윤상원 문학상 수상.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김남주 문학의 밤' 개최.

▲ 1994 (49) :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췌장암으로 별세.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 군이 있음.

▲ 2000. 5. 20 광주 중외공원에 민족시인 김남주 시비 건립 /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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