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인 사이쇼 히로시가 쓴 <아침형 인간>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면서 촉발된 아침형 인간 붐. 얼마 전에는 <저녁형 인간>까지 출간, 붐 조성에 한 몫하고 있다.

아침형이든 저녁형이든 두 책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말고 자신의 미래나 목표를 위해 조금이라도 지속적으로 투자하라는 것.

오는 15일 천안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천안방통고)를 졸업하는 김옥주(38·천안시 신방동)씨. 배움의 길을 잇기 위해 가정 주부로 바쁜 일상을 쪼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학업에 참여한 김씨를 만나 늦깎이 공부의 재미를 들어봤다.

남편에게도 비밀로 시작

▲ 두 아이의 주부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하는 김옥주씨는 방송통신대에 진학 예정이다. ⓒ2004 윤평호

"제가 실력이 있든 없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데 학력이 늘 걸림돌이 됐어요. 평생동안 걸림돌에 매여 사느니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죠."

운동을 좋아하고 쾌활한 성격의 김옥주씨는 한때 위생관리사를 꿈 꿨다. 하지만 대학 졸업이나 현장 경력 8년 이상을 요구하는 자격시험 조건을 알아본 뒤에는 꿈을 접어야 했다. 김씨의 학력은 고교 중퇴. 현장 경력은 더욱이 없었다. 학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시작의 기회마저 박탈된 셈.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일은 2001년 2월말 생활정보지에 실린 천안방송통신고 신입생 모집 광고를 우연히 본 뒤 다시 떠올랐다. 김씨는 중단했던 공부를 재개하기로 결심, 바로 방송통신고를 찾아갔다. 원서접수 마감일은 이미 지났지만 학교측에 사정, 간신히 입학허락을 받았다.

"입학은 했지만 주위에 알려지는 것은 창피했습니다. 남편에게까지 비밀로 했어요."

주중에는 매일 오후 8시 이후 40분씩 두과목에 대한 수업이 라디오로 진행된다. 일요일에는 격주로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중앙고에서 수업이 이뤄진다.

집에서는 아이들과 남편 몰래 라디오를 청취했고, 격주 일요일이면 모임이 있다는 핑계로 학교를 찾았다. 비밀이 오래 지켜지지는 못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 교재를 펼친 채 라디오 방송에 집중하고 있는 김씨를 발견한 것.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남편은 오히려 섭섭한 반응을 보이며 옥주씨를 격려했다. 그 뒤 남편은 김씨가 학교에 가는 일요일이면 자연스레 밥 당번을 맡는 등 집안 일을 자처했다.

초등학교 4학년 딸 아이는 아직도 엄마의 일요일 등교를 평범한 외출로 알고 있지만 중1 아들은 얼마 전 눈치를 채, 솔직히 말했다. 아들은 "엄마 좋은 일 한다"며 성원을 보냈다.

어르신들의 배움열기에 감동

늦갂이 공부가 쉬울 턱이 없었다. 주중에 한 번이라도 방송을 놓치면 진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선생님은 최대한 쉽게 설명하지만 영어나 수학은 아무래도 힘에 부쳤다. 가끔씩 포기의 유혹도 찾아왔지만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급우들의 힘.

"한 반이 40명 정도인데 저는 젊은 편이에요. 저희 반의 최고령자가 65세이고 마흔 살 이상 50대 분들도 많아요. 10대와 20대도 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정말 수업에 열성적이세요. 결석이 없는 것은 기본. 수업시간에는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을 하세요."

어르신들의 배움 열기에 자극 받아 김씨는 흐트러지는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다.

재미난 일도 많았다. 김씨는 풍성한 점심시간을 가장 좋은 추억으로 회고했다. 여름에는 김밥부터 밑반찬까지 각자 학생들의 도시락을 한데 모아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겨울에는 교실 뒤켠에서 직접 뜨거운 국을 조리하기도 했다.

선생님과의 돈독한 정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 학교에서는 스승과 제자로 깍듯했지만, 수업이 끝나고나면 학교 밖에서 늘 뒤풀이를 가지며 선생님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얼씬 못했겠죠. 오히려 나이가 드니 선생님이 편한 점도 있더라구요. 선생님도 저희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인으로 대화도 더 잘 되고 물론 존경심은 다를 바 없죠."

졸업을 앞 둔 김씨는 또하나의 도전을 준비중이다.

"미루면 더 힘들어 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한 것. 졸업 이후 상담가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당장은 졸업이 목표. 방통대는 학사관리가 엄격해 졸업이 녹록치 않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걸음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김옥주씨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배움의 길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충고도 잊지 않았다.

"망설인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끝내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배움에는 정말 늦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