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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이 '사람발자국 화석' 지켜냈다
[발굴] 화석 발견지는 15년전 군사기지 예정지
2004년 02월 10일 (화)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일본군 공군기지의 흔적인 알뜨르 비행장. 땅바닥에 덮개처럼 생긴 콘크리트 구조물은 비행기 격납고.
ⓒ2004 황평우
지난 2월 6일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던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및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 일대 16만5000㎡(4만9912평) '아시아 최초의 사람 발자국 등 대규모 화석' 발견은 제주 도민들의 염원을 모았던 시민운동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번에 화석이 발견된 대정읍 안덕면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비행장(현 알뜨르 비행장)이 있던 곳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결7호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도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관동군 등 일본군 정예병력 6만-7만여 명을 제주도에 주둔시켰다. 당시 제주도 인구 25만여 명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제주에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 각종 군사시설 건설에 나서는 한편 제주 섬사람들에게 식량지원 등도 요구했다. 또 남제주군 대정읍 서남쪽 해안가에 있는 송악산 주변도 그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 상관없이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본토 사수를 위한 '옥쇄'지역으로 삼았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

일본군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송악산-사계리-화순항-월라봉에 이르는 해안간에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해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다.

알뜨르 비행장. 제주사람들은 대정읍 알뜨르 평야에 건설했던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을 이 지역 이름을 따 이렇게 부른다. 해안가에 맞닿은 알뜨르 비행장은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 비행장(현 알뜨르 비행장)이 있던 곳

1926년 처음 계획된 비행장 건설은 193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1차로 이뤄졌다. 일본군은 1937년에 비행장 확장계획을 세워 기존 20만평에서 1945년까지 2차로 80만평으로 비행장을 확장해 사세보의 해군항공대 2500여 명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했다. 가미가제호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부근에는 대공포 진지와 정비고,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도 있다. 또 비행장 동북쪽 탄약고터는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탄약고와 2층으로 만들어진 복도가 있다.

몇 년 전 당시 일본군 장교로 알뜨르 비행장에 근무했던 일본인들이 이곳을 방문한 뒤 이 지역의 한 학교에 성금을 전달하려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송악산 일대에는 지하진지를 구축했던 흔적들이 있다.

일본군은 송악산 지하에 대규모 땅굴을 파고 지하진지를 구축했으며, 송악산 알오름쪽의 땅굴은 군수물자를 실은 트럭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크고 넓게 건설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파들어 간 땅굴이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15개의 인공동굴이 뚫려있는데, 너비 3-4m, 길이 20여m에 이르는 이 굴들은 성산일출봉 주변의 인공동굴처럼 어뢰정을 숨겨놓고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했던 곳이다.

또한 제주도는 4·3항쟁이라는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88년 온 세상이 서울올림픽이라는 열기에 도취되어 있을 때도 제주도는 생존권과 환경문제로 싸우고 있었다.

   
▲ 1988년 제주 도민들의 군사기지 철회 대회 전단
1982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의 지시에 따라 1985년 건설부가 마련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보면, 도내 30개 지역 1825평방㎞(553만평)에 1991년까지 총사업비 1조2904억원을 들여 위락, 숙박시설과 골프장, 상가 등을 건설해 국제적인 관광지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 도민들은 “개발이익의 외부유출, 뛰어난 해안경관 훼손, 공유수면 매립과 하수의 증가로 오는 어장의 상실과 생태계파괴” 등의 이유로 제주도개발계획 철회와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번에 세계적인 발견으로 기록되는 사람 화석이 발견된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일대는 18만7천평을 노인휴양시설과 별장, 운동시설이 계획되었으나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8년 5월 6일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버린다.

국방부가 제주도에 보내온 공문(군시 24464-939. 1988.5.6)에 의하면 국방부 군사시설 보호구역 심의위원회에서 이미 1987년 12월 28일에 결정되었으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1988년 5월 6일에서야 제주도로 통보되었고, 제주도청은 계속 감추고 있었다가 8월 12일 제주신문이 모슬포 송악산 지역이 국가주요시설에 포함되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988년 8월 31일 대정읍장이 모슬포지역 상모리, 하모리, 사계리(사람 발자국 화석 소재지), 보성리, 인성리, 안성리 6개리 이장을 불러 보여준 조감도에 의해 군 비행장임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었다.

공군기지 조감도에 의하면 길이가 3.5㎞인 활주로가 두 개 건설되는데 이는 전략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것이었다. 1988년 당시 최신예 B-1 전략폭격기도 2㎞의 활주로로 이착륙이 가능했던 것이다.

   
▲ 군사기지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화석이 발견된 노계리와 가파도, 마라도까지 포함된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 내 미군기지의 철수에 따라 한반도를 유력한 후보지로 이전하는 것을 미국상원에서 결정해준 상태였으며, 한미행정협정 제4조에 따라 언제든지 대한민국의 영토안에 미국의 군대를 배치할 수 있었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이에 대해 고창훈(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화석이 발견된 장소 대정읍 노계리와 군사기지가 들어서려는 대정읍 일대는 같은 지역이고, 직선거리 활주로 3.5㎞ 두 개가 건설됨을 예상해서 제작된 피해예상지도를 보면 가파도 마라도까지 포함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제주도 땅(100만평)이 군사기지로 수용됨을 보여줬다"며 "15년 전 제주 도민들이 대책위를 만들어 군사기지가 못 들어오게 막았다. 1988년 8월 27일부터 시작해서 정부당국이 포기할 때인 1989년 2월까지 밤낮으로 싸웠다”고 회상했다.

   
▲ 1988년 제주를 다룬 당시 한겨레신문 기사
ⓒ2004 한겨레신문
그러나 제주 도민들이 생존권, 생태환경보전을 위해 이렇게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중앙일간지 중 유일하게 <한겨레신문>만 보도를 하게된다. 지금은 한겨레신문사 사장이 된 고희범 기자가 대표적이다.

1988년 10월 11일자 한겨레신문(김영철 기자)을 보면 88년 9월 26일 남제주군 대정국민학교에서 주민 2000여명이 모여 “모슬포 송악산 군비행장 설치반대 주민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1989년 8월 15일,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위해 한라산 백록담의 물과 백두산 천지의 물을 떠다가 합수해 보자는 학생들의 통일 열정에, 정부 당국은 한라산 일대 등산로와 출입이 가능한 모든 곳에 경찰을 배치해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출입을 통제했다.

중앙지 가운데 유일하게 <한겨레>만 '비행장 반대' 보도

필자는 당시 28세로 제주 4·3 항쟁의 현장답사와 송악산 대정읍 일대 군사기지 설치를 반대했던 제주를 느끼고 싶어,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군사기지가 백지화된 후에도 대정읍에는 아직도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세월의 무게에 힘에 부쳐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군사기지가 들어오는 것에 치를 떨고 있었다.

필자는 지난 2월 6일 “세계적인 사람 화석 발견” 기자 브리핑에 참석해 문화재청이 준비한 제주 사계리 주변 영상자료를 보는 순간 번쩍하면서 떠오른 단상들!

'저 곳은 15년 전 제주도민들이 어마어마한 군사기지설치를 막은 곳이다! 만약 그때 군사기지를 막지 못했다면, 사람 화석이고 뭐고 물거품이었을 것이다.'

시민운동은 당장 앞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운동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제주도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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