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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객들도 우리말 재즈 좋아해요"
매혹의 재즈 싱어, 나윤선 인터뷰
2004년 02월 09일 (월)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나윤선의 공연 모습
ⓒ2004 나윤선 사랑방
나윤선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맨 처음 그녀를 본 것이 어느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에서였던가, 이 예쁜 언니의 결 고운 음성과 분방한 스캣과 능란한 무대 매너에 청중들은 너나없이 모두 빨려 들었다. 흡사 사이렌(siren)의 노래에 홀린 항해자처럼,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한 하데스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윤선은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드문’ 재즈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전까지 한국 재즈는 ‘미모’의 ‘여성’이 부르는 ‘가요’와 ‘타협’한 ‘보컬’ 음악이 아니면 도무지 팔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윤선은 모든 매체로부터 고루 주목받으며, 대중과 평단과 마니아들에게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 물론 나윤선이 ‘미모’의 재즈 ‘보컬리스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결코 아무개처럼 가요(나쁜 의미!)와 타협하지도, 여피들의 밤 시간을 위한 무작(Muzak)으로 행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까다로운 편에 속하기까지 한다!

한국 재즈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곽윤찬, 임미정 등의 음반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요컨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그래서 문득, 나윤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때마침 그녀의 두 번째 음반이 발매된 것을 핑계로, 그녀의 데뷔 이전과 음악 세계, 그리고 재즈에 관한 그녀의 이런저런 견해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질문자의 짧은 지식 외에는 아무 것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나윤선은 무대에서의 조리 있는 말솜씨 그대로, 꼼꼼하고 논리 정연하게 답변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아울러 나윤선님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나윤선 사랑방’의 운영자 최림님께도, 매니지먼트를 맡고 계신 박한별님께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셨는지도 말씀해 주시고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올드 팝, 샹송, 이문세, 양희은, 서태지와 아이들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골고루 즐겨 들었고요."

-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 주최 샹송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어떤 곡으로 출전하셨나요? 그리고 나윤선님의 이 이전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니콜 리우(Nicole Rieu)의 “Mais Je Sais Que Ca Va M'arriver”라는 곡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냥 보통 학생으로 지냈고요,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 1994년부터 뮤지컬 <지하철 1호선>를 비롯해 <오션 월드> <번데기> 등에 출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해 서울 연극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로서도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셨는데, 급작스레 유학을 떠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뮤지컬을 하는 동안 늘 부족함을 느꼈어요. 노래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유학을 떠났지요."

- 많은 가수들은 연극 무대에서의 활동이 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나윤선님의 경우에는 어떠셨나요? 개인적으로는 나윤선님의 보컬이 갖는 강한 환기력(喚起力)이 무대 경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저는 훈련받은 배우가 아닌 완전 '초짜'였기 때문에 무대의 신성함(?)과 그것이 주는 공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연을 했답니다. 무식해서 용감했지요. 그래서 제 자신의 무대경험이 제게 구체적인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도움이라면 그 당시 주위의 선배나 동료, 후배들의 공연을 보며 많이 받은 편입니다."

- 대체로 미국 재즈 보컬 가운데 나윤선님과 같은 ‘미성의 소유자’는 드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클래식 전통이 녹아든 유럽 재즈 쪽이 나윤선님의 음색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유학 장소를 프랑스 CIM으로 결정하신 것에 이러한 차이가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들 중에는 미성의 소유자도 꽤 있는 편입니다. 저도 늘 가지고 있던 재즈보컬리스트에 대한 편견(허스키에 굵은 저음)이 프랑스 유학 후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나라나 지역과 상관이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 프랑스에서 상당 기간 유학 생활을 하셨고, 차후에는 교수로서도 재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이름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네요. CIM을 비롯해 프랑스 음악 학교의 커리큘럼은 어떤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CIM은 유럽에서 최초로 생긴 재즈학교입니다. 역사는 약 30년 정도 되었고요. 프랑스 재즈 뮤지션들의 70% 정도가 이 학교 출신입니다. 커리큘럼은 보통 다른 음대와 차이가 없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세계 여러 나라의 뮤지션들의 마스터 클래스와 공연이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있다는 점입니다.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나라의 음악을 배우고 들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 그렇군요. 이제 1집 음반 'Reflet'(2001)에 대해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이 음반에서 김광민님의 'Rainy Day'를 새로 부르셨는데, 굉장히 참신한 해석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외에도 패티김의 '초우' 또한 멋진 재해석으로 찬사를 불러 일으켰는데요, 이렇게 보면 나윤선님은 국내 음악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국내의 가곡과 가요, 동요 등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아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공부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답니다."

   
▲ 퀸텟 멤버들과 함께
ⓒ2004 나윤선 사랑방
- 데뷔 음반에 함께 한 연주인들과의 호흡이 굉장히 훌륭합니다. 특히 저 개인적으로는 공연에서 베이스와 비브라폰의 연주를 인상적으로 들었는데요, 함께 한 연주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베이시스트 요니 젤닉(Yoni Zelnik)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비상한 머리에 뛰어난 작곡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프랑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주자 중에 하나지요. 반면에 그의 일상생활은 말도 아닐 만큼 늘 실수투성이지만…(이를테면 데워지지도 않은 프라이팬에 계란을 깨놓고서는 이 계란에는 흰자가 없다고 난리를 친다던가 말이죠)

비브라폰을 연주하는 다비드 니어만((David Neerman)은 영국태생으로 어려서부터 팝 음악을 즐겨서인지 곡을 쓸 때도 굳이 재즈라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편입니다. 영화, 연극음악을 만들기도 합니다. 비브라폰을 그만둔다고 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러머 다비드 죠르쥴레(David Georgelet)는 할아버지가 오스트리아계이지만 프랑스 태생입니다. 안정적인 연주로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같이 연주하고 싶어하는 드러머이고요. 저희 중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철은 제일 빨리 든 친구입니다. 그룹의 매니저 역할도 맡아 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처음엔 이태리 출신 기욤 노(Guillaume Naud)였다가 그 친구의 사정으로 인해 다른 피아니스트를 영입한 상태입니다. 이름은 벵쟈멩 무쎄(Benjamin Mousseux), 많은 콩쿨에서 상을 휩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아참, 2003년 12월 한국공연에는 독일 피아니스트 프랑크 뵈스터(Frank Wester)가 저희와 연주했지요. 훌륭한 대타였답니다."

- 앞서 말씀드렸듯 나윤선님의 가창, 그 중에서도 스캣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강한 환기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됩니다. 굳이 대조하자면, 알 자로 같은 분의 스캣이 ‘기인열전’의 묘기처럼 보인다면 나윤선님의 경우에는 ‘신비함’과 같은 정서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까요?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이 있는지요.
"특별한 비결은 없고요. 스캣이란 게 원래 그렇지만, 목소리로 악기흉내를 많이 내 본 것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로 뭘 해볼 수 있을까 이것저것 궁리하다가 어느새 습관이 든 것 같기도 하구요."

- 데뷔 음반은 수록곡의 스타일이 매우 다양합니다. 나직한 발라드가 있는가 하면 “Your Face”처럼 다소 아방가르드 한 곡들도 존재하는데요, 보컬리스트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에는 적합하지만 다소 앨범으로서의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1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거든요."

- 나윤선 님의 데뷔 음반은 언론으로부터도 많은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발매된 재즈 음반으로서는 나름대로 좋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즈 음반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에 대해, 나윤선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재즈는 어느 나라 건 간에 그리 많이 들려지는 음악도 아니고 또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악도 아니기 때문에 큰 걱정을 안고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은 덕분인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나윤선님과 비슷한 시기에 피아니스트 곽윤찬님도 데뷔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두 분이 종종 협연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함께 연주할 때 호흡은 어떤지, 그리고 연주인으로서 곽윤찬님에 대해 나윤선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묵묵히 열심히 연습하며 내실을 기하는 훌륭한 연주자입니다. 끊임없이 좋은 연주로 우리 모두를 기쁘게 또 놀라게 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후진양성에도 많은 애를 쓰시고 있지요."

- 이번에는 유럽 발매 음반인 'Light for the People'(2002)에 대한 질문입니다. 도입부의 'One Way'와 'Song for the People', 'Untitled' 같은 곡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MJQ(Modern Jazz Quartet)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을 주고, 특히 베이스와 비브라폰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처음 세 곡의 배치는 의도하신 바가 있는 건가요?
"처음 두 곡은 유럽공연 때마다 연주하는 곡들이고 또 할 때마다 달리 연주되는 곡들입니다. 각 연주자에게 충분한 자유를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들이라 어찌 보면 저희 그룹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때문에 1, 2번에 수록하기로 결정 했구요. 3번 곡은 저 뺀 나머지 멤버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 앞서 언급한 곡들을 포함해 새로 쓰여진 곡들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한국 재즈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미권 스탠다드의 커버보다는 작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나윤선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고전에 대한 공부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요. 몇 번의 실패와 반복되는 고민을 통해 나오는 나만의 곡들이 남들에게 들려지고 또 검증 받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발전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대부분의 재즈공연이 창작곡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중에는 소위 뜨는 음악이 되어 방송 등을 통해 나오기도 합니다."

- 음반에서 'One Way', 'Untitled', 'Nostalgia', 이렇게 세 곡은 한국어 가사로 된 곡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윤선님의 음반에는 항상 한국어 가사로 된 곡이 포함되어 있군요. 국내 발매음반은 그렇다 하더라도, 유럽 발매음반에서도 세 곡의 한국어 노래를 포함시키신 것은 어떤 이유인지 궁금해집니다.
"멤버들의 전적인 요구(강요?)와 공연을 통해 얻은 관객의 반응 때문인데요. 처음엔 한국어와 재즈는 상추쌈에 얹은 버터 조각 같은 관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만은…. 의외로 많은 관객들이 한국어로 된 곡들을 좋아합니다. 이국적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만요. 제 프랑스 친구들은 '초우'를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뜻은 전혀 이해 못하면서 말입니다."

- 전작인 'Reflet'에 비해 수록곡들이 음악적으로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특히 'Sometimes I'm Happy'는 과연 이 곡이 냇 킹 콜(Nat King Cole)의 간질간질한 노래였는지 의아할 정도인데요. 이런 음반 구성은 유럽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근래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나오는 재즈 앨범들은 대부분 실험정신이 가득한 앨범들입니다. 물론 많이 팔리진 않지요. 하지만 무대를 통해 자주 연주됩니다. 많이 색다를수록, 개성적인 아이디어가 넘쳐 날수록, 실력이 확실히 느껴질수록 그 아티스트의 연주기회는 많아지지요. 저희의 경우 어떤 시장성을 염두에 두고 음반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음반을 듣고 저희 공연에 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기를 하는 바람에서 음반을 만들었을 뿐이죠."

- 이야기가 나온 김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의 재즈 시장에 대해 여쭈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프로필을 보면 상당히 많은 콩쿠르와 페스티벌에 참가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유럽 지역이 그처럼 재즈가 활성화되어 있는 편인가요? 유럽의 재즈 음악 환경과 시장성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유럽에는 일년 내내 재즈공연과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몇 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페스티벌에서부터 작은 산간 지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공연까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재즈는 죽었다, 라는 말도 많습니다만 나라의 지원과 기업들의 후원이 끊이지 않는걸 보면 재즈가 정말 죽었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음악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뮤지션들에게는 천국입니다. 24시간 들을 수 있는 재즈 라디오 방송, 매주 몇 번씩 TV방송되는 세계 최고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 등등. 그리고 유럽은 각 나라들 간의 음악적인 교류가 활발한 것도 특징입니다. (지리상의 여건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이 모든 것들이 부럽긴 하지만 이것도 돈 많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따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유럽 지역의 재즈는 미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은 잘 알려진 ECM 레이블의 음악을 놓고 유럽 재즈를 재단하기도 하는데요, 유럽 재즈의 특징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그리고 현재의 트렌드는 어떠한지도 말씀해 주시죠.
"글쎄요, 유럽친구들과 가끔 그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늘 결론은 차이가 없다는 쪽으로 납니다. 물론 유럽은 클래식 음악의 역사가 깊고 아카데믹한 것에 많은 비중을 두는 편이라 정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그러한 면들이 음악에 반영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유럽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고 그들이 듣는 음악 대부분이 미국 음악인 것을 보면 이젠 더 이상 이분법은 부질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의 트렌드요? 글쎄요. 다양한 스타일의 총합적인 재즈화(化)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틀즈 음악에 DJ가 곁들여진 트럼본 4중주. 기계를 통해 뽑아낸 인간의 목소리가 베이스가 되어 아프리카 민속음악 비슷한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들리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화려한 즉흥연주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죽어라고 비밥과 스윙만을 고집하며 연주하는 뮤지션의 수도 어마어마하답니다."

-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에서 재즈와 록, 힙합 음악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나윤선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건 전혀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음악을 무지무지 좋아하고 많이 듣습니다. 물론 자국 음악도 아주 많이 듣지만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조지 W. 부시는 엄청 싫어하지만 마돈나에는 미치는 거죠."

   
▲ 나윤선의 새 음반 [Down By Love]
- 이제 막 발매된 새 음반 'Down By Love'(2003)에 대해 질문드리겠습니다. 커버곡들이 굉장히 다채롭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매지 스타(Mazzy Star)부터 스팅(Sting), 폴 사이먼(Paul Simon), 그에 더해 김민기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까지 각양각색인데요. 본인이 직접 선곡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평소에 록 음악도 즐겨 들으시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함께 작업한 올리비에 오드(Olivier Ode)와 함께 선곡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음악은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장르는 가리지 않고 듣는 편입니다."

- 새 음반은 이전 두 음반에 비해 더욱 차분하고 어떤 면에서는 뉴에이지의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굳이 재즈라는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려 한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어떤 생각을 갖고 새 음반을 작업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평소에 해보고 싶은 곡들을 녹음했습니다. 처음 시작이 재즈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재즈 이외에는 하지 않는,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저를 보시는 것 같네요. 하지만 사실 저는 재즈를 포함한 서양 대중음악을 공부한 게 얼마 되지 않는, 아직 미숙한 뮤지션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며 제 스타일을 찾아나가야 할, 아직 갈 길이 먼 가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오래 음악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를 하시는 것은 알았지만 새 음반을 보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곡들까지 등장합니다. 대체 몇 개 국어를 하시는 건가요?^^ 또 가사를 붙이거나 노래할 때 이러한 언어적인 부분도 고려하시는지요.
"언어를 염두에 두고 선곡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요. 저는 한국어,불어 약간, 영어 아주 조금 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 이외 언어는 따로 공부를 해서 읽고 조금 이해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입에 맞는 노랫말은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 때 그때 하게 되는 곡의 색깔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 어떤 법칙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새 앨범에는 샹송과 탱고로 분류될 만한 곡들도 존재합니다. 영미권 외의 음악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월드뮤직 가운데서는 주로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프랑스의 특성 덕에 월드뮤직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친구와 그 나라 음악을 공연 해 볼 기회도 있었고, 카메룬, 앙골라 친구와 함께 아프리카 음악을 원어(?)로 불러보기도 했답니다. 브라질 춤 선생의 그 섹시함에 넋이 나가 한동안 브라질 음악을 즐겨 듣기도 했고요. 인도 사리를 걸치고 그 친구들 노래를 따라 하기도 했죠. 대부분이 약간은 건성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개는 그 나라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빌려 듣고 했던 것이 전부라 많이 듣는다고는 볼 수 없지요. 요즈음에는 아랍의 팝을 조금 듣고 있습니다."

- 새 앨범에 대해서는 쉽고 편안하다는 평가와 다소 심심하다는 평으로 양분되는 것 같습니다. 제 견해로는, 전자는 데뷔 음반의 '초우' 같은 곡을 좋아했던 분들이고 후자는 유럽 발매음반이나 'The Jody Grind' 같은 곡의 팬인 것 같네요. 나윤선이라는 가수의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측면 가운데 이번 음반은 정적인 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까요?
"예, 아마도 그렇게 보시면 될 듯 싶네요."

- 새 음반 작업에는 기타리스트인 올리비에 오드의 역할이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드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실까요. 그리고 그와의 작업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광고 음악 작곡가 겸 기타 연주가, 편곡자, 작곡자 그리고 동시에 저희 앨범 'Light For The People'을 제작한 음반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고집이 센 친구고 저도 마찬가지라 가끔은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그래도 깊은 음악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친구라서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멀티 인스트루멘티스트(Multi-instrumentist)로서, 작곡자로서, 편곡자로서 또 녹음 엔지니어로서 수고해주었지요."

- 이제 다른 질문들을 드려 보겠습니다. 근래에는 국내에서도 재능 있는 음악인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재즈 피아노를 치는 진보라양이나 임미정님에 관심이 가는데요, 나윤선님께서 눈여겨 보시는 국내 뮤지션이 있는지요.
"한 두 분이 아닌데요. 외국에 나가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모두들 재능 있는 뛰어난 뮤지션들이죠. 그 중에 피아니스트 이발차양이 생각나네요. 아직 어린 뮤지션이지만 그 성실함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한국 재즈 시장은 외적으로는 성장을 이루었지만 실제로는 편집 음반과 보컬 곡만 인기를 얻는 등 거품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분위기’를 위한 배경음악으로 취급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나윤선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재즈 시장의 문제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의 부족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커다란 무슨 콘서트 홀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뮤지션들끼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발표할 수 있는, 적은 관객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음악이란 연주되어져서 들려질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자연히 발전도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지도자로서 느끼는 국내 학생들의 장단점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학생들 보다는 학생들을 둘러싸고 있는 학교, 사회,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의 장단점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듯싶네요. 세세하게 얘기하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요. 간단히 말해서 학생들에게 많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문제가 참 많지요. 그건 선생님인 우리도 똑같이 겪었던 문제들이지요. 비주류 음악을 해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장을 받는 나라들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한 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도 아니고요.

TV에 나오는 스타가 되는 게 전부인줄 아는 학생들에게 재즈도 음악이니 좀 오래 걸리더라도(평생이 걸리더라도) 한 번 해 보렴,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한 번도 비브라폰을 본 적이 없는 학생에게 비브라폰과 마림바의 소리의 차이를 설명해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아프리카 음악도 국악만큼 훌륭하다는 걸 말로 설명해봐야 그 둘 다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창피하지만 저도 잘 몰라요) 학생들에겐 그 설명이 마치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어느 외딴 섬나라 원주민들의 언어 정도로 밖에 안 들리겠지요. 이게 우리의 현실이네요."

- 아도르노 같은 양반은 클래식과 비교해서 재즈를 열등한 음악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또 일부 비판가들은 한국 땅에서 미국 음악인 재즈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악의적인 주장들에 대한 나윤선님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그럼 가요는 한국 음악일까요? 피아노는 우리 악기입니까? 클래식은 왜 고급 음악이고 클럽에서 연주되는 재즈는 왜 저급 음악으로 인식되는지 안타깝습니다. 색소폰은 그냥 불면 불어지는 악기가 아닙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하루종일 연습하듯 색소폰 연주자도 하루종일 연습을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그런 생각을 낳았다면 그것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세상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가 있듯이 음악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죠. 들어오는 건 막지 말고(그 어느 나라 음악이든) 각자 선택해 듣고 그 대신 우리 전통음악은 사라지지 않게 보호하고 하는 쪽으로 신경을 돌리는 게 낫지 않나 합니다. 한국에서 재즈를 한다는 건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이 갈수록 거창해지네요.^^;; 도식적으로 한국 재즈를 구분하자면, 신관웅과 같은 미 8군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1세대, 버클리 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2세대, 그리고 나윤선님과 같은 3세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세대가 성인 가요와, 2세대가 대중 가요와 어쩔 수 없는 타협을 해 왔다면 3세대의 뮤지션들은 ‘타협의 여지는 줄이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재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글쎄요,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은 제가 대답하기엔 조금 벅찬 질문이네요.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요? 재즈를 좋아하시는 많은 팬 분들의 관심과 격려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실까요.
"1, 2월 프랑스 공연이 있어요. 그리고 2월 초에는 프랑스에서 나올 새 앨범을 녹음합니다. 4월 초 쯤에는 한국에서 작은 공연을 할 예정이고요. 10월에도 역시 한국에서 저희 퀸텟의 투어를 가질 계획입니다."

- 계속 좋은 활동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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