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연세대 독문과
교수들의 비리의혹을 제기한 김이섭 강사. 그는 최근 2004년 봄학기로 예정된 '생활독일어' 강의를 박탈당했다.
ⓒ2004 홍성식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당한 징계인가, 합법적인 교무행정권
행사인가.
지난달 초 연세대 독문과 신임 교수 인사과정의 부당성과 교수들의 연구비 착복의혹(아래 관련기사 참조) 등을 제기했던
김이섭(46) 강사가 2004년 봄학기로 예정돼 있던 '생활독일어 2'의 강의를 박탈당했다.
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강사는 "지난 주말에 (강의박탈이) 결정된 것으로 아는데 사건 당사자인 나에게 아직까지 어떤 통보도 없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강의박탈 결정과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됐다.
"이번 결정은 과 내부의 비리를 폭로한 것에 대한 괘씸죄를 물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김 강사는 "강의를 뺐긴 것보다 대학사회의 전근대성과 교수들의 전횡에 더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리에 눈감는
것은 스스로에게 당당하자는 내 초심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훗날 아들이 자라 '아버지는 2004년 겨울에 무엇을 했느냐'라고 물을 때 부끄럽지
않으려고 내부고발을 결심했다"는 김 강사는 "지금 내가 받는 고통이 한국 대학사회의 투명화에 조금이라도 기여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강사는 이번 일을 겪으며 "한국사회의 관료주의와 나태함을 피부로 느꼈다"면서도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될 줄
알았는데 기꺼이 도움을 준 총학생회와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전국교수노조 등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익차원의 실명고발이
잘못된 관행을 바꾼 사례를 남기고싶다"는 김이섭 강사.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강의박탈보다 큰 문제는 대학사회의
전근대성"
- 지난달 제기된 비리의혹에 대해 학술진흥재단이 실사를 벌인 것으로
안다. "연구비 횡령 등으로 내가 학술진흥재단에 고발한 사안에 대해 1월 12일부터 보름간 실사가 진행됐다. 실사팀장과 면담
결과 연구비 10% 착복과 영수증 위조, 연구원 인건비 갈취 등 제기된 의혹의 상당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들었다.
하지만
학술진흥재단이 실사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내주 월요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발표를 한다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건들에 관해서는
추후 총학생회, 대학원학생회, 비정규직교수노조, 전국교수노조 등과 연대해 형사고발도 할 계획이다."
- 신임교수 임용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교측에서 받아들이고 있는지. "1월 5일 교무처장에게 심사내용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답변도 없다. 1월 15일에는 내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교수 임명통보를 받은 것으로 안다. 현재 '독문과 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내주부터는 위원회를 통해 학교측에 심사결과 공개를 요구할 방침이다. 결국 임용무효소송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예정돼 있던 강의를 박탈당했다고 하던데. "이번에 박탈당한
'생활독일어 2' 강의는 이미 지난해 11월 독문과 교수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당사자와 한마디 상의 없이 강사를 바꾼 것은
괘씸죄를 물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건 강의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행패에 가까운 교수사회의 전횡은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개선돼야한다.
지난 3일에는 총학생회에서 강사변경과 관련된 문건열람을 요청했지만 담당자가 휴가중이라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았다. 이와
관련 총학생회가 독문과 비리혐의 교수 강의거부와 퇴진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알고 있다."
-
언론보도에 의하면 학과장은 '강의박탈과 학술진흥재단 실사와는 관련이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어처구니없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길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만약 학과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엇 때문에 강사가 바뀐 것이지 설명을 해줘야할
것 아닌가. 일주일 이상 당사자에게 통보조차 없는 업무처리방식도 문제다. 이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묻고싶다."
"학술진흥재단 실사결과 발표 주시중"
- 재직하는 학교에서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고싶다는 것이 내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눈앞의 부정에
눈감는 것이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내 아들이 '아버지는 그때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많은 시간강사들의 처지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이익이 있겠지만 그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교수와 시간강사의
부조리한 지배구조를 깨고 공익을 위한 실명고발의 선례를 남겼으면 한다. 힘겹겠지만 그걸 두려워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비리혐의자로 지목한 사람이 선배 혹은 스승일텐데 입장이 곤란하진
않은지. "나는 그분들을 스승과 선배로 모시려고 했지만 그분들이 나를 제자, 혹은 후배로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인간관계는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일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 힘겨운 한 달을 보냈을텐데 현재 심경은? "한국사회의 관료주의와 나태함을 다시 한번 실감한 시간이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불꺼진 강사연구실에 있으면서 혼자라는 고립감에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에 용기를 준 분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
이번 사건은 한 시간강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넘어갔다. 살아오며 가장 힘든 시기였고,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해야하는가라는 자괴감도 있었으나 후회하지 않는다."
- 향후 계획은? "일단 월요일
학술진흥재단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후 화요일쯤 총학생회, 비정규직교수노조 등과 회견을 열 것이다. 내 앞에 버티고 선 것이 큰 권력이고, 거대한
힘이라고 해도 저항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내 길이 옳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지 못한다면 번역과
창작, 또는 다른 학교에서 강의하는 방법을 찾아 생활을 해결하려는 결심까지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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