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3.2.4 토 12:00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사회/정보
       
아버지 흰 쌀밥 한 술 얻어먹던 밤
늦은 밤 아버지 진지 드시는 걸 지켜보는 아이들의 속셈
2004년 02월 07일 (토)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쓰임새 많던 확독이 이젠 박물관 앞이나 식당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2004 김규환
아버지와 어머니

외출이 잦았던 아버지. 일곱 식구를 온전히 먹여 살리지 못한 때문일까.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밖으로 돌았다. 산판(인부를 부리고 한 골짜기의 산을 사들여 나무를 베어 제무시(GMC) 자동차에 실어 외지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한 때 꽤 잘 나갔던 사업)으로 자수성가하여 장만한 30마지기가 넘는 논을 일시에 잃게 되자 술과 노름에 빠져 밖에 계시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이런 아버지 대신 집안 살림하랴 묵갈림 농사일을 도맡게 된 어머니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묵갈림은 소출의 절반을 농지 소유주에 주고 품삯과 관리비, 비료, 농약 값을 경작자가 모두 지출하는 방식으로 논에서 다발 수를 세어 바로 나누던 방법으로 소작의 한 형태이다. 하지만 경비를 떨고 나면 농민에게 남는 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위신을 깎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가장에 대한 존경심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묵묵히 남편인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기를 바랐고 아이들이 어서 성장하여 집안을 일으켜 주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 처음에는 센불로 때주고 끓어 넘치면 불을 줄이고 거품이 줄어들고 김이 건조해지면 때기를 멈춰 불을 꺼낸다. 15분 쯤 후에 뜸불을 한번 더 때주면 맛있게 퍼지는 가마솥밥. ⓒ2004 김규환

 밥 굶기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헌신

그런 아버지가 밖에서 돌아오시기 전에 속으로 생활고를 한탄하며 부뚜막이 꺼져라 한숨지으면서도 식구들 밥 굶기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쌀이 없으면 보리쌀, 보리쌀마저 없으면 죽으로 대신했고 그마저 없으면 대체 식량인 고구마, 감자, 무, 옥수수, 콩나물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하셨다. 비단 우리 집뿐이겠는가 마는 어머니의 수고와 고통 그리고 헌신은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그건 같이 살아본 사람만이 안다.

그날도 날이 저물기 전에 어머니는 보쌀(보리쌀)을 확독(돌확)에 물과 같이 붓고 드글드글 갈았다. 그 다음 솥에 간 보리쌀을 넣고 한번 끓여 준다. 그 다음 다시 물에 담가 불린다. 압맥(壓麥)이나 할맥(割麥)이 없던 때였으니 웬만해서는 껍질만 벗겨 놓은 보리쌀이 잘 퍼지지 않아 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번의 공정을 통해 자식들과 당신께서 드실 양을 준비한다. 늘 양은 부족하다. 다시 어머니는 광으로 들어가 차대기에 반 말쯤 남아 있던 쌀 한줌을 꺼내 오신다. 쌀을 일어 돌을 골라낸다.

이윽고 지푸라기를 뭉쳐 만든 수세미를 둘둘 둘러 솥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아래엔 무겁고 약간 눌어도 누룽지를 만들어 먹을 생각으로 늘 보리쌀을 널찍하게 대충 깐다. 그리고 그 위에 쌀 한줌을 조심히 오복이 앉힌다.

   
▲ 된장국과 함께 했던 지난 시절 ⓒ2004 김규환

한 줌 쌀과 보리로 밥 짓던 시절

불이 활활 타오르고 밥이 끓는다. 그 무겁던 솥뚜껑이 열릴 지경으로 "두두두 둑" 무섭게 소리를 내며 끓는다손 치더라도 보리쌀과 멥쌀이 섞이지 않는다. 다소 과하게 한 번 뜸 들이는 불을 때고 나면 쌀알보다 작던 보리가 탱탱 불어 세 배쯤 불어나 있다.

어머니는 기다란 주걱에 물을 묻히고는 복개 딸린 오목한 아버지 밥그릇을 먼저 준비하신다. 뚜껑을 열어 쌀만 수북이 쌓인 윗부분을 몇 번 슬슬 흔들어 휘젓고는 아버지 그릇에 모양 좋게 정성스레 퍼 담는다. 아버지는 고봉으로 담아도 꾹꾹 눌린 밥을 싫어하시기에 세 번 나눠 담아 그냥 올려놓기만 할 뿐이다.

몇 톨 남지 않은 쌀 밥알 개수는 금세 샐 수 있다. 이제부터는 김 모락모락 나는 솥에 더 다가가 한꺼번에 보리밥을 사정없이 휘젓는다. 대충 흔들어 퍼 담으면 끈기와 찰기를 기대하기 힘들기에 대여섯 번, 심할 땐 열 번 넘게 요리조리 저어 줘야 물러 퍼진 보리밥에 윤기가 조금이나마 더해진다. 먹성에 따라 양을 조절하여 골고루 나눠 담고 당신의 그릇엔 밑바닥만 채웠다.

   
▲ 복개 덮어 솜이불에 파뭍어 두고 먼저 밥을 먹는다. ⓒ2004 김규환

 복개 덮어 아랫목에 파묻어 두고 일찌감치 저녁 먹는 식구들

국을 뜨기 전에 어머니는 방으로 급히 아버지 밥을 들고 들어가 솜이불이 깔린 아랫목에 파묻어 두셨다. 나는 그 사이 아궁이 안쪽에 아직 남아 있는 불을 꺼냈다. 설 때 남은 조기를 굽기 위해서다.

적사(석쇠)에 세 마리를 넣고 올려 둔 지 얼마 안됐지만 국을 다 푸기 전에 노릇노릇 고소한 비린내를 풍기며 익어간다. 조기가 구워지면서 흐르는 기름기가 뽀글뽀글 흐르다가 동그랗게 타 들어가면 이내 뒤집어 주기를 반복한다.

쉰내 풀풀 나는 김치에 만날 먹는 ‘씰가리국(무청을 말려 된장 넣고 끓인 된장 시래기 국)’이 차려졌지만 상이 들어가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비워지는 고소한 보리밥.

상이 들어가는 틈을 타 불 한번 때 주고 늦게 들어오신 어머니는 아이들 밥 먹는 동안 주걱으로 바닥에 얼마 되지 않게 눌러 붙어 탱탱 불은 보리밥알을 득득 문질러 양푼에 물 2/3, 밥알 1/3 비율로 훌렁훌렁하게 담아 오신다.

 
   
▲ 조기굽는 불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리던가 불을 꺼내 석쇠를 올리면 최고로 맛있는 조기구이가 됩니다. ⓒ2004 김규환

어머니 누룽지마저 뺏어 먹는 철부지들 그리고 아버지의 늦은 귀가

"엄마, 나 누룽밥 묵을겨."
"그려라…."

아이들은 어머니의 허기를 알 턱이 없는지라 숟가락으로 비워진 밥그릇을 쨍그랑거리며 마치 제비 새끼가 먹이 달라고 조르듯이 조른다. 물 조금씩 따르고 몇 술 퍼가는 야속한 아이들…. 숭늉까지 가득 뱃속에 채우고서야 뒤로 물러서는 아이들이 어머니는 밉지 않다.

"어~ 잘 묵었다."

식구들 밥을 먹이고 어머니와 누나는 경물(설거지 물)을 데워 구유 같은 설거지통에 넣고 세제 하나 없이 그릇을 말끔히 씻고 보리 몇 알 몇 톨, 고춧가루 몇 개, 먹다 남은 음식물 부스러기를 구정물 통에 버리고 들어왔다. 시골 살림살이는 해 지기 무섭게 밥 먹고 복조리나 길쌈 등 저녁 일을 하기 위해 일찌감치 해치운다.

   
▲ 잘 구워진 조기. 세마리 중 두마리는 우리가 먼저 먹고 한마리만 아버지 것으로 따로 덜어 놓았습니다. ⓒ2004 김규환

 밤은 깊어가고 아버지 돌아오시는 시각이 다 되어간다.

"에헴, 헴"
"니기 아부지 오셨다. 얼렁 나가봐라."
"오셨는그라우."
"아직까장 안 잤느냐?"

헛기침을 소리에 우린 마루에 나가 아버지를 맞았다. 꽤 강한 취기와 싸늘한 바깥 기운을 가득 안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벙태 같은 우와기(윗저고리, 상의를 뜻하는 일본말)를 벗는다. 순간 방안엔 "짜르르르" 정전기가 흘렀다.

   
▲ 이불에 넣어두면 웬만해선 식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일까요. 솜 이불의 과학과 어머니의 정성 때문일 겁니다. ⓒ2004 김규환

 아버지 진지 드시는 걸 진지하게 지켜보는 아이들의 속셈

윗목 한 켠에 상보(床褓)로 덮어 놓은 밥상이 아버지 앞에 놓였다. 아랫목에 파묻어 둔 그릇을 꺼내 뚜껑을 열자 김이 아직 모락모락 피어 올라온다. 졸음이 몰려오는 아이들은 벙거지 쓰듯 머리만 빼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버지께서 진지 드시는 걸 골똘히 지켜본다.

진지를 한술 두술 꾹꾹 눌러가며 떠드시며 국과 나박김치를 드시고는 꼭꼭 씹으신다. 최소 서른 번은 씹어 입안에 달짝지근하게 고이게 하고는 다음 번 숟가락을 가져가신다.

한 숟가락 뜨시는 모양은 마치 제사 지낼 때 고인에게 숟가락 꽂는 방법과 비슷하여 한 번 두 번 세 번 방향을 돌려가며 조금씩 얼버무려서는 가운데 모아 꾹 눌러서 한 숟가락 뜨는데 고춧가루나 국물 하나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리고서 달랑 한 마리 남은 조기를 서너 번 젓가락질을 하여 넣으시더니 상을 물리신다. 이 때 아이들 눈은 초롱초롱 빛난다. 그렇다고 와락 덮쳐 달려갔다가는 어른들의 호통에 남은 밥 얻어 먹는 건 도루묵이 될 터인지라 살금살금 다가간다.

"아부지, 더 안 드실라요?"
"그려, 입맛이 없다. 니기들 사이 좋게 나눠 묵으라."

   
▲ 싱건지 국물로 마감을 하면 깔끔했지요. ⓒ2004 김규환

 아이들 차지가 된 뜨끈뜨끈한 흰 쌀밥

다들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절반 가량이나 남아 있는 쌀밥. 아버지는 양반 아들이었다. 절도 있게 세상을 사셨던 당신은 밥 드실 때 게걸스럽게 드시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밥그릇은 뜨끈뜨끈하다. 아버지 숟가락을 제일 먼저 잡은 사람은 셋째형이었다.

"얼렁 정제(정지, 부엌) 가서 숟가락 갖과."
"나 올 때까장 묵으면 안돼. 알았제?"
"잉. 걱정 말고 갔다와야."

불 없는 깜깜한 부엌으로 간 나는 흙바닥인데도 신발을 신지 않았다. 어둠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지레짐작으로 설강 위를 뒤져 잠자지 않는 형제들 수를 셀 틈도 없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뭉치 챙겨 왔다.

흰 밥, 북쪽에서는 ‘이밥’이라 부르는 흰 쌀밥이 오목하고 길쭉한 밥그릇에 절반 가량 남아있다. 이 땐 동생부터 순서가 정해지기 마련인데 다섯 살 아래 막내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니 첫 번째가 내 차례다. 한 숟갈 몽창 떠서 입에 넣는다. 어찌나 말끔하게 드셨는지 침 냄새도 없다.

   
▲ 그 때 그 부엌의 설강 일부. 남쪽지방은 물기가 잘 빠지게 대를 엮어서 널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그릇과 온갖 잡동사니가 다 올려져 있었지요. ⓒ2004 김규환

쌀밥 두세 숟가락에 조기 뜯어 먹는 행복

입 주위에 쌀밥 알이 예닐곱 개나 붙어 있어 손으로 밀어 넣고 구운 조기를 손으로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쫄깃했다. 뼈와 머리, 꼬리까지 통째 씹어 먹는 굴비 한 조각이면 밥 반 그릇 먹어치우는 데 충분하다. 일 년에 몇 번 될까 말까 했던 그 늦은 밤 만찬을 기다리던 그 기다림과 설렘을 함께 맛보고 있는 중이다. 쌀밥과 꼬스름한 조기의 조화랄까.

번갈아 가며 먹다 보니 다음 차례가 될 때를 기다리는 건 무척이나 길었다. 한번 더 찾아온 내 순서. 다섯 아이들이 쌀밥 반 그릇을 두 숟가락씩 나눠 먹는 그날 밤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마침 그날은 어머니께서 군불을 더 많이 때서인지 방바닥마저 따뜻했다.

도란도란 속삭이며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다. 스르르 잠에 빠진 그 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우릴 축복해 주었다. 

오마이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174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김치명인 1호 김순자 대표 썩은 배추
심곡1새마을지도자협의회 '척사대회'
[김승민 목사 칼럼-⑤]"자신 없는
부천희망재단 김범용 이사 '도시 비우
[생생포토]부천김포노총 박종현 의장
부천 대곡~소사선 사업기간 연장…올해
경기도사회서비스원, ㈜코린토로부터 1
경기도교육청, 9,591명의 인사 단
제28대 경기도의회 사무처장에 김종석
경기도 "산업현장을 관광상품으로"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