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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2월의 문화인물 "신 흠"
2004년 02월 06일 (금) 00:00:00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신  흠(申  欽) : 1566~1628, 조선 중기의 문신.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을 지냄. 조선 시대 4대 문장가로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문장력으로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 제작에도 참여하였음.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정주(程朱)학자로 이름이 높아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짐. 작품으로는 《상촌집(象村集)》, 《야언(野言)》, 《낙민루기(樂民樓記)》 등이 있음.
 
 신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간결하고 장중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으면서 항상 문필과 연관된 문한직(文翰職)을 겸했다. 그러면서 대명(對明)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문운의 진흥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며 인조대(代)에 와서는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왕조 최고의 벼슬인 영의정에 올랐다. 
 문장에 있어서는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계곡 장유(谿谷 張維), 택당 이식(澤堂 李植)과 더불어 월상계택(月象谿澤)으로 호칭되며 조선 4대 문장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한편 한문학의 정종(正宗)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경당(敬堂) 또는 백졸(百拙)이라 호를 지었고 어떤 때는 남고(南皐)라 부르기도 하고 현헌(玄軒)이라 바꿔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포 상두산(象豆山)아래 농장생활을 할 때는 상촌거사(象村居士)라는 호 하나를 사용했다. 만년에 들어서는 방옹(放翁)이라 일컫기도 하고 유배생활 중에는 여암(旅菴)이라 편액을 걸기도 하였다. 한편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부음을 듣고 애도하며 글을 지을 때는 현옹(玄翁)으로 명명했다. 

 신흠은 1566년(병인년·명종 21) 1월 28일 한성부 장의동에서 태어났다. 정숙한 덕과 훌륭한 예의범절을 갖춘 어머니 은진 송씨가 가슴속으로 큰 별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다음날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흠은 모습이 남달랐는데, 이마가 넓고 귀가 컸으며 눈은 샛별 같았고 오른 뺨에는 탄환 모양의 사마귀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노는 것도 범상치 않았으며 몸가짐이 단정하고 무게가 있었다. 
 그는 부계와 모계 모두 사대부 가문으로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어 외조부인 의정부 좌참찬 송기수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여덟살 때부터 외조부의 훈도를 받아 글 공부에 전념하여 10세 때에는 논어와 이소(離騷)를, 13세 때에는 경서·사서·제자·문집을, 14세 때에는 천문·지리·율력·산수·의학을 두루 섭렵하고 유려하게 글을 잘 지어 명성이 드러났다.
 1581년 16세에 향시(鄕試)에 급제하고 20세에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仕試), 21세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다. 학문에 전념한 결과 일찍부터 문명(文名)을 떨쳤고 관직에 나가서는 준엄한 이념과 행동을 보이면서 자기 시대의 수많은 과제를 정면으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그는 관료로서 또는 정치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흠이 살았던 시대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계축옥사와 인조반정, 정여립의 난과 이괄의 난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그 사건들의 고비마다 신흠은 정치권의 중심에 있었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그 사건들과 관련을 지니게도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삭탈관직, 방축, 유배등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고통을 새겨야 했다. 그러나 그는 방축이나 유배의 생활에 동요되지 않았고 오히려 풍요한 마음을 경영하며 글로 부유한 세상을 맞이하였다.
 
 신흠의 문장 작법은 육경(六經)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려서는 한퇴지를 좋아하였고 장년이 되어서는 고문(古文)을 거의 모두 읽었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 좌씨(左氏), 사기(史記), 장자(莊子), 이소(離騷), 예기(禮記), 고악부(高樂府), 선시(選詩),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시등 제가(諸家)의 글을 섭렵하고 애송하면서 대가의 문체를 수명(修明)하였다. 그가 남긴 『상촌집』63권에는 한시 2036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작품은 문장 4대가로서의 명성을 새겨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한글 시조 30편은 한시에 비해서 비록 적은 수이긴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여 수준 높은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적을 더욱 크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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