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송만덕 감독의 갑작스런 퇴진으로 현대 캐피탈의 지휘봉을 잡은 김호철 감독. 화려했던 선수 생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감독 시절과는 반대로 이번 V-투어 2004 대회에서는 거듭되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수퍼리그 포함하여 현재 62연승을 구가하면서 배구판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

군대 동기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로 알려진 두 감독이 2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T&G V투어 2004' 4차대회(구미) 남자부 A조 1차전에서 다시 만났다.

삼성화재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된 경기

▲ 삼성화재의 손재홍 선수 ⓒ2004 삼성화재 배구단

두 팀이 경기에 임하기 전에 필자는 비록 삼성화재의 석진욱 선수가 어깨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하고, 손재홍 선수가 대신 출전하지만 워낙 삼성화재의 기본기와 조직력이 훌륭하기 때문에 삼성화재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고, 1세트는 생각대로 삼성화재가 현대 캐피탈을 25:20으로 승리했다.

특히 1세트에서 현대 캐피탈은 서브 리시브의 난조와 중앙을 활용하지 않고 좌우의 오픈 공격에 의존하며, 서브의 강도가 낮았고 무엇보다 높이의 우세를 살리지 못하면서 삼성화재에 맥없이 무너졌다.

2세트에서 현대 캐피탈은 방신봉의 블로킹이 살아나고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경기 초반 삼성화재와 시소 게임을 펼치며 8:7로 앞서 나갔으나 수비 실책과 후인정의 공격 범실이 이어지면서 점수는 8:9로 역전되었고, 백승헌의 왼쪽 공격이 신선호에게 막히면서 11:13까지 끌려갔다.

그러나 후인정의 백어택이 살아나고 방신봉이 장병철과 이형두의 공격을 블로킹하면서 16:15로 재역전시켰고, 이에 질세라 삼성화재도 김상우의 A속공과 신선호의 B속공을 성공시켜 다시 18:17로 전세를 뒤집었으며 양 팀은 18:18, 20:20, 22:22로 팽팽히 맞서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22:22 상황에서 양 팀은 이선규와 김상우의 중앙 공격을 활용하며 23:23을 만들었으나 이형두가 결정적으로 공격 범실을 하고 손재홍의 왼쪽 공격을 방신봉이 블로킹하면서 2세트는 현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삼성화재, 막판 집중력 돋보여

현대 캐피탈은 그동안 열린 V-투어에서 삼성화재에 한 세트도 뺐지 못했다. 하지만 2세트에서 처음으로 한 세트를 따낸 후 그 여세를 몰아 3세트에도 5:2, 7:3, 10:6, 15:12로 앞서 나갔고 백승헌의 계속되는 공격에 점수차는 18:12로 벌어졌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18:12로 뒤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신선호의 강서브가 성공하면서 연속 4득점하여 현대 캐피탈을 추격하였고 김호철 감독은 삼성화재의 상승세를 가라 앉히기 위해 타임 아웃을 요청했다.

그 이후 현대 캐피탈은 장영기의 시간차 공격과 방신봉의 A 속공이 성공하고 이선규가 신선호의 A 속공을 1인 블로킹하면서 3세트를 25:22로 따냈고, 삼성화재는 중앙 속공이 단 1득점에 그치고 공격 루트를 다양화하지 못해 결국 높이가 좋은 현대 캐피탈에 3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4세트에서 경기를 끝내려는 현대 캐피탈과 63연승의 행진을 이어가려는 삼성화재의 접전은 4세트 초반에도 이어져 경기는 3:3, 7:7, 10:10, 13:13의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었다.

▲ 장병철 선수의 연습 장면 ⓒ2004 명재석

하지만 13:13의 상황에서 삼성화재는 서브 리시브로 조직력을 가다듬고 강서브로 상대팀의 조직력을 와해시켰고, 그동안 부진했던 장병철과 이형두의 좌,우 공격이 살아나면서 20:17로 앞서 나갔다. 이어 이형두의 왼쪽 강타로 5세트를 25:19로 마무리하였다.

4세트에서 삼성화재는 무려 70%의 서브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으나 현대 캐피탈은 50%에 그치는 서브 리시브 성공률으로 삼성화재에 4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세트 스코어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삼성화재는 손재홍을 빼고 석진욱을 투입했으며, 현대 캐피탈 역시 백승헌과 후인정의 자리를 맞바꾸며 장병철의 공격에 대비하는 전술을 세웠다.

후인정은 이러한 감독의 뜻에 부응하면서 경기 초반 장병철의 공격을 블로킹하면서 팀의 상승세를 주도했고 현대 캐피탈은 백승헌이 살아나면서 6:3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삼성화재가 아니었다. 삼성화재는 8:10으로 뒤진 상황에서 신선호가 A 속공을 성공시키고 백승헌의 공격을 블로킹하면서 10:10 동점을 만들었고 이에 당황한 현대 캐피탈은 방신봉의 터치넷과 권영민이 토스 범실을 범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기세가 오른 삼성화재는 장병철의 오른 강타와 신선호의 블로킹 그리고 박철우의 공격 범실로 내리 3득점하여 15:10으로 결국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경기는 삼성화재 선수들의 위기 관리 능력이 돋보인 경기였다.

삼성화재 선수들은 1세트를 손쉽게 따내고 2, 3세트를 연달아 내주자 서브 리시브와 강서브 그리고 세트 플레이로 인한 공격 등의 기본기에 충실한 플레이를 펼쳤고 거함 삼성화재를 맞아 2세트를 먼저 따낸 현대 캐피탈 선수들은 역전을 당하자 당황하고 쉽게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다.

필자는 이게 바로 우승팀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함 삼성화재를 맞아 위축되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훌륭하게 펼친 현대 캐피탈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고 무엇보다 현대 캐피탈의 방신봉, 후인정, 이호 트리오가 부활한 것이 현대 캐피탈에게는 오늘 경기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또한 기본적인 높이가 갖춰져있고 조커로 투입된 장영기 선수가 조직력이 약한 현대 캐피탈의 공.수를 메꾸어주며, 권영민의 토스워크가 본 궤도에 오른다면 현대 캐피탈은 삼성화재의 8연패를 저지할 강력한 팀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