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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들...
베트남 남부 최대 휴양지를 찾아
2004년 02월 03일 (화) 00:00:00 이종희 통신원 jh4396@hananet.net

건기에 접어든 후, 처음 자연스럽게 술렁이던 자연의 변화가 어느새 나태해질 무렵,우리가족은 황금연휴를 맞아 바다를 향해 떠나기로 했습니다.

   
▲ 베트남 무이네 휴양지(밤부 빌리지) ⓒ이종희
떠나는 날, 맨 처음 보았던 것은 구정연휴가 시작 된지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도로 가에 즐비하게 서있는 귀성객과 그들을 가득 실은 승합차였습니다.

그 차는 여덟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할 수있다는 고산지대 달랏으로 향하는 차였는데 한 사람이 앉게 되어있는 좌석에 또한 사람이 더 마주 앉게 자리가 배치되어있었지요.

배치된 좌석이랄 것까지 없는 좁은 공간에 한 처녀가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앞에 똑같은 표정으로 겨우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아저씨.

정원을 훨씬 넘긴 자동차 벽이 곧 팽창해 터질 듯 위태로운데 그 차는 도로 가에 서있는 귀성객 옆으로 또다시 다가가고 있었지요.

   
▲ 무이네 휴양지(밤부 빌리지 사진) ⓒ이종희
교통량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귀성객들의 특별한 이동수단이 정해져 있지 않은 도로에서 고향이름표가 붙은 자동차를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채우며 기다리고 있었지요.

긴 기다림 끝에 어렵게 승차를 하더라도 종이조각처럼 구겨진 몸을 하고 장시간동안 차장을 스치는 풍경과 바람, 그리고 곧 이룰 만남을 위안 삼아 그들은 그 모진시간을 견뎌 내겠지요. 꼭 피난을 떠나는 전쟁난민처럼 하고서 말입니다.

매끄럽지 못한 도로사정으로 새로운 버스가 수입되면 맨 먼저 의자부터 교체를 한다고 하더군요. 푹신한 의자는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선 멀미하기에 안성맞춤이랍니다..

   
▲ 연꽃(베트남 밤부 빌리지) ⓒ이종희
우리의 목적지는 지난해 여름에 가 보았던 판 티엩 무이네, 베트남 남부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변입니다. 같은 비용으로 더 멀고 좋은 곳을 갈 수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과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이 어쩐지 두렵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다시 가고 싶을 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었지요.

그 곳은 호치민에서 200여km쯤 되는 거리이고 4시간쯤 쉬지 않고 달려야 했습니다. 떠날 땐 일 년 내내 여름이라 똑같은 풍경이 거기에 있을 줄 알았지요.

두 시간쯤 달려 어느새 고무나무의 군락지에 들어섰습니다. 양쪽도로 가에 빽빽이 들어선 고무나무들은 여전히 병정처럼 곧게 줄을 맞추고 서있었지만, 지난해 보았던 푸른숲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풍경이었지요.

앙상한 가지가 하얀 뭉게구름을 떠받고 서있는 그 나무 아래 물소 떼가 한가롭게 거닐고, 그 옆에 마른 낙엽을 태우는 목동. 허연 연기는 나무밑동을 감싸고 이내 어디론가 흩어지고 있었지요. 창문을 열면 낙엽 타는 내에 금방이라도 질식해 버릴 듯한 내 넋은 이국의 풍경에 매료돼 참으로 오랜만에 촉촉이 젖어 들었습니다.

   
▲ 베트남 매화(밤부 빌리지) ⓒ이종희
얼마큼 지났을까. 차장을 무수히 스쳐 간 고무나무숲 마른 가지에 어느새 연두 빛 봄이 와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인데도 각자의 생육은 달라 서로 다른 계절에 잠겨 있는 풍경을 보고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여전히 저는 변화의 무지 앞에 서있습니다.

고무나무 군락지를 벗어나자 또다시 마을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시골집 정면 내부에는 조상의 신전이 화려하게 치장되어있었지요.

베트남은 불교, 천주교 두 종교가 높은 산맥을 이루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시는 조상신은 넓은 대지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을 아닐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조상을 숭배하고 집집마다 조상신을 모셔 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대 명절인 구정, 동지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조상을 모시는 첫 제사를 지내고 새해가 밝아 나흘째되는 정오에 조상을 배웅하는 제사를 또다시 지낸다고 하더군요.

구정이 다가오자 조상신전과 집안에 장식할 현란한 꽃들이 시장마다 가득했습니다. 이 땅에도 복숭아꽃이 피고 노란 매화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얼마 전 꽃 전시회에 갔다가 비록 겹 동백꽃이긴 했지만 동백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었지요.

어느덧 지평선이 사라진 자리에 산새가 그리 험하지 않은 산들이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남부 지역은 오랜 전쟁에 폭격을 맞아 사라진 산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푸른 초원이 남아 있는 곳은 습지이고 갈색으로 펼쳐진 들녘은 오랜 건기에 이미 생을 마친 야생초들의 주검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기다림의 목적을 또다시 이루고 말겠지요.

마침내 판 티엩 항구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짧은 다리가 보이면서 포구에 묶여 있는 수많은 어선들이 원색의 깃발을 매달고 있었고 남은 푸른 여백엔 모기장만한 그물이 원시적으로 올려져 있더군요. 고기가 몰려올 물때가 되면 그 그물은 바닷물에 잠기어 고기의 덫이 되겠지요.

   
▲ 밤부 빌리지(밤부 빌리지) ⓒ이종희
다리를 건너 시내를 벗어나자 어느새 무이네 바다가 눈앞에 출렁였습니다. 수많은 야자수 이파리가 바람에 춤을 추는지 야자수 이파리들 춤에 바람이 부는지 모를 시간에 우리는 지난해 갔었던 빅토리아 리조트를 막 지났습니다. 그리고 5분쯤 더 달려 우리가 묵게 될 밤부 빌리지에 도착하였지요.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정오를 조금 넘겼으니 예상했던 시간에 도착한 셈이었습니다.

달려오는 동안  휴게소하나 없는 도로였지만, 내 안에 사위어가던 계절들을 만나느라 잠시라도  지칠 틈이 없었지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새로운 계절을 만나면 그것이 바로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여행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태어나 이 먼 곳으로 떠나 와서야 비로소  깨닫는 저는 뭐라 설명해 드리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 봉숭아 울타리(밤부 빌리지) ⓒ이종희
우리식구가 선택한 밤부 빌리지는 예전에 갔었던 빅토리아 리조트보다 규모는 적었지만 위락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있고 예쁘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명절 때라 이 나라 명절을 대표하는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지만, 뜻밖에도 우리의 울밑에선 봉숭아꽃을 이 곳에서 만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것도 그 동안 변화의 난무에 올곧게 버틴, 그 순박하고 쌉쌀한 내를 품어 내던 홀 꽃 봉숭아말입니다.

이튿날 새벽산책길에 다시 찾은 봉숭아울타리에서 손대면 톡 터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터져버린 봉숭아씨를 남몰래 받아 오며 얼마나 짜릿하고 들떴는지 모릅니다.

   
▲ 일출(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우리가 묵을 방은 바닷가 모래사장 바로 앞에 있더군요. 통나무와 대나무로 내,외벽을 만들고  야자수 잎으로 육각의 지붕을 엮은 운치있고 아담한 집이었습니다. 지붕꼭대기에 난 육각의창으로 밤하늘을 수놓던 무수한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줄 것만 같았지요. 밤에는 모든 소음을 파도가 다 삼켜 버린 듯 파도소리만이 그 방 만을 감싸고 있더군요.

간밤 잠은 설쳤지만, 먼동이 트자 저 만치 밀려난 바다 가까이 일출을 마중 나가 보았습니다. 

   
▲ 일출(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오랜 세월의 기다림을 무색게 했을 만큼 이미 세상은 해를 낳기 위한 진통이 시작되어 동녘 수면위로 붉은 핏줄이 툭툭 터지고 있었지만, 그래서 하늘은 쑤 욱 해를 빼내었고 어느새 둥둥 떠오르는 해에게서 혈기 완성한 젊음을 보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순간적이어서 충분히 그를 나의 심미안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 일출(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섬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바다에서 뜨는 해를 처음 보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섬은 서쪽, 지는 노을만 바라보게 열려 있었거든요.지금껏 저녁 놀이 전부였던 저에게 아침 노을의 찬란함을 이튿날 같은 시간대(6:05)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답니다. 

   
▲ 일출(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그 해가 떠오를 때, 지난밤 바다에 놓아둔 그물을 걷어 오는 어부들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그 배와 어부가 꼭 백조들이 노을 빛에 받으며 헤엄쳐 오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 형상이 점점 가까워지자 말로만 듣던 바구니 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 어부(베트남 무이네) ⓒ이종희
황금빛 모래밭을 금발머리 부부가 알몸의 사내아기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을 거닐던 단란한 이 가족을 전날 새벽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보았지요. 수영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이국 사람들 사이로 늙은 부부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파도 밭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휴양지다운 느긋하고 편안함이 견고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바다는 하얀 파도와 바람을 떠밀고 들어와 쉼 없이 일렁이더군요.

   
▲ 산책나온 가족(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전날처럼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가 묵고있던 빌리지에서 20여분 거리인 무이네 사막을 가기위해 길을 나섰지요.

차가  어촌마을에 접어들자  물소 한 마리가 차도를 따라 느릿하게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흔한 모습들이지만 그 소가 어디로 뛸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한다고 하더군요. 

   
▲ 여행온 아이들(무이네 휴양지) ⓒ이종희
마을 중심쯤에는 도로를 사이로 소박하고 분주한 오전시장이 열리고 있었고, 약간 외곽 도로에 접어들자 이 마을의 공동묘지가 나타났습니다. 잔디가 심어 있지 않았지만 우리 나라처럼 둥그런 묘지가 있는가 하면 이 나라 집을 축소한 것처럼 보이는 묘지가 더러 화려하게 치장되어있었지요.

마을이 끝이라 생각 할쯤 또다시 자그마한 집들이 듬성듬성 나타났다간 사라지곤 했습니다. 가끔 젓갈을 담은 큼직한 항아리들이 집 주위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지요.

어느덧 도착한 사막은 바다를 앞에 두고 거대한 짐승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음에도 발자국이 좀처럼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바람의 기세를 짐작할 수있었지요.

사막 정상에 오르니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페인 곳이 있는가 하면 물결무늬가 선명하게 드리워져 한 폭의 그림으로 태어나 있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저 멀리 은빛 물결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조각배와 수평선이 오히려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사막(베트남 무이네) ⓒ이종희
언제부터 이 땅이 사막화 되었는지 모르나 주변 토질이 모래이니만큼 이대로 오랜 건기가 지속 된다면 사막은 더 많은 땅을 잠식하고 말겠다 싶었지요.

지난해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와 사막에서 슬라이드를 즐기라며 미끄럼대를 내밀었습니다. 구경만 하고 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아이들은 높은 고지까지 따라와  능숙하게 모래 미끄럼틀을 만들고는 기어코 미끄럼을 타게 하더군요. 그렇게 헌신적으로 자리를 만들고 하루에도 수도없이 땡볕을 이고 사막을 오르는 이 아이들 얼굴에 섬머시마 티가 완연해서였는지 제 가슴에 살아난 측은지심은 참 오래 갔습니다.

먼 훗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나의 옛 동산 사막에서 친구들과 관광객과 그리고 어느 한국인 가족 사진을 하나, 둘, 세이! 목청껏 소리질러 찍어 주며 얼마간 벌이를 했노라'고  가슴 아린 어린 시절을 추억하겠지요.

   
▲ 붉은 개울(베트남 무이네) ⓒ이종희
사막을 내려와 아이들이 내밀던 엽서에서 그 곳의 해변과 사막과 그리고 붉은 개울이라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200미터쯤 떨어져 있는 붉은 개울은 황토흙이 딱딱이 굳어져 성벽을 이루고 있었고 멀리서 보면 꼭 붉은 물이 흐르는 모습 같기도 했고, 미로처럼 난 좁은 길을 걸을 땐 동화 속 마귀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지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조각된 조각품들의 야외 전시장이었습니다.

떠나 올 때  엽서를 사 달라고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던 아이들 틈에 자신이 팔 엽서를 말없이 들고 서있던 일곱 살 박이 아이가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주더군요.

그 아이에게 사 온 엽서들을 볼 때면 그 아이는 여전히 웃고 서있고 그래서 제 가슴은 아직도 초연해 질 수가 없지만 내 안의 여행은 지금도 돛을 내리지 못한 채  아름다운 인연을 향해 떠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사막에 갇혀도 당분간 걱정없이 견딜 수있는 오아시스를 안고 말예요.

이종희 통신원님은 2003년 9월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베트남 현지에서 사업을 하시는 남편을 따라 1남1녀의 두자녀를 데리고 지난 10월 베트남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 이종희 통신원님의  홈페이지 http://dofls.hiho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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