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2.11.29 화 12:05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문화/예술
       
얼치기 '사무라이'를 향한 매서운 독설
[영화평]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
2004년 02월 02일 (월)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

   
▲ 영화 <자토이치> 포스터 ⓒ2004 스폰지

나라 안팎이 온통 뒤숭숭하다. 총선을 겨냥해서 당선 운동과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는 시민단체들과 이를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실랑이는 이미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늘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를 놓고 설왕설래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다케시마(독도)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영토다"라는 고이즈미 총리의 직격탄 때문에 양국간의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난 그들에게서 '사무라이'를 느꼈다. 한번 충성하면 죽음으로 영주를 섬기는 사무라이들 말이다.

'앗'하는 순간에 일본 전체를 하나의 의견, 하나의 색깔로 만들어 버리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 국민들 가슴 속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남의 나라 영토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한번 해보겠다 이거지?"하며 덤벼드는 얼치기 사무라이들이 아직도 일본에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TV 시리즈 역시 사무라이를 다룬 내용이 많다. 카츠 신타로라는 배우에 의해 자그만치 26번이나 리메이크될 만큼 인기가 있었던 맹인 검객 이야기 <자토이치>는 30대 이상의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유독 그들이 사무라이에 열광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들이 열광하는 스모 경기에는 "승부 세계의 찬스는 두 번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예선이든 본선이든 한칼에 승부를 본다는 얘기다. 이런 스모 경기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영화, 드라마, 연극들을 보는 가운데 일본인들 개개인 가슴 속에 사무라이 승부 의식이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겉으로는 늘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강한 승부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중적인 민족성. 무리들을 단칼에 베어 쓰러뜨리는 사무라이의 모습은 그들이 가질 수 없는 열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스모에 대해서, 또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일본'은 영영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명분'이 있어야 무사인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는 언뜻 먼저 개봉한 <라스트 사무라이>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관객들을 찾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토이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의 문화와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서양에서 바라본 일본의 '날 선' 이데올로기를 흥미롭게 다뤘다면, <자토이치>는 그 이데올로기를 가슴 깊숙이 품고 있는 일본 무사들의 이야기다.

   
▲ 마을 사람들에게 완력을 행사하는 '긴조'일당 ⓒ2004 스폰지

당연한 것이지만 '무사'가 있어야 '무사도'도 성립할 수 있다. 지배층이 문인(文人)이 아니라 칼 찬 무사라는 점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 베트남, 우리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갖게 했다. 단적으로 '독서와 과거(科擧)'로 특징지어지는 유교의 현실 적응성에 어떤 형태로건 한계를 설정한 것이 그 좋은 예다.

한 사회를 떠받치는 지배층으로서 무사들 사이에 그들 나름대로 도덕과 이념 체계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무사의 도덕 역시 시대에 따라서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전란의 종언과 평화의 정착이 무사들에게 오로지 축복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리얼하게 말해서 싸움이 있을 때 무사의 존재는 진정 빛난다. 그들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싸움 자체가 없어지면 그들의 존재의의는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싸움이 없는 평화의 시대, 게다가 이제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그들은 이제 그런 고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마을에 군림한 채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긴조' 일당은 좌판으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완력을 행사한다. 스스로 그들이 존재해야 하는 '명분'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비열한 행위가 곧 그들에게는 명분이 되고, 자신들이 숭상해야 할 무사도가 되는 것이다.

   
▲ '맹인검객' 자토이치는 부박한 현실에 귀를 세운다 ⓒ2004 스폰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지만 신기에 가까운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는 떠돌이 검객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 분)는 도박장을 기웃거리거나 마사지 출장을 다니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긴조 일당이 만들어 놓은 작은 사회 속에 유유히 흘러들어온 자토이치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박한 현실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운다.

그 속에는 어릴 적 무사들에 의해 부모를 잃게 된 게이샤 자매, 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칼을 잡아야만 하는 남자 등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만 하는 가엾은 인생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자토이치>에 나타난 '무사도'

<자토이치>는 사회적으로 도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 인물들이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들을 겹겹이 포개놓는다.

긴조 일당은 그들이 구축해 놓은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무명 검객 하토리(아사노 타다노부 분)를 고용하고,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기 위해서 차마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는 게이샤 자매와 앞 못 보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이들을 무 썰 듯 단칼에 베어 넘기는 자토이치는 자신들이 세운 '명분'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 하토리가 택한 것은 '현실'에 편입되는 것이다 ⓒ2004 스폰지

그 과정에서 자토이치의 '장애'는 예기치 않은 충돌을 빚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을 쉽게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의 무질서에 눈을 뜨지 않는다. 이것은 자토이치를 '의(義)를 자신을 깨끗이 하는 도리로 삼는' 전통적인 무사로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하지만 긴조 일당에게 고용된 하토리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다다미방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하토리의 나른한 표정은 청부살인을 해치울 때의 냉혹함과 잘 어울린다. "무사도라는 것은 곧 죽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는 말은 곧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신적인 미덕에 한 목숨 걸었던 영화 속 하토리의 무사도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칼과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부박한 현실은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그가 택한 길은 바로 그 현실에 '편입'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 양태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렇게 대치되고 있는 두 인물을 떠안게 된 사회를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배경 음악에 맞춰 밭을 가는 듯한 농부들의 모습은 <자토이치>가 심각한 사무라이 영화가 아님을 대번에 알아맞힐 수 있는 힌트가 된다. 현실과 정신을 따로 분리하기를 좋아하는 기타노 다케시는 이번 영화에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법한 금발을 가진 검객을 만들어 냈다.

기타노 다케시가 말하는 '일본'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말하라면 많은 일본인들은 기타노 다케시를 꼽는다. 그는 일본내에서 영향력 있는 감독이자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그가 연예인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사실 별다른 게 없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일본인의 속성을 비집고 들어가 그들을 향해 쉴새없이 독설을 퍼붓기 때문이다. - <이규형의 일본을 알고 싶다>중에서

   
▲ 하토리는 사무라이의 표본에 가까운 인물이다 ⓒ2004 스폰지

 많은 일본 소식통들이 쓴 책을 들여다보면, 기타노 다케시가 왜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지 분석해 놓은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그를 입에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있어도 얼굴 표정은 연신 웃음을 띄며 "도모 스미마센"을 연발하는 일본인들의 생활 패턴을 비웃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일본 속의 또 다른 문화'를 만드는 인물이다.

그가 연출한 <자토이치>도 주인공 자토이치가 맹인 검객이면서 안마와 도박에 일가견이 있다는 기본 설정만 빌려왔을 뿐,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감독이 스스로 창작한 것이다. 수십 차례 리메이크된 시리즈물의 한계를 벗어던지겠다는 연출 의도 이외에 <자토이치>를 보면서 느낀 생각은 "사무라이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을 비웃는 영화구나!"라는 것이었다.

영화는 감독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다. 그가 직접 발설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무라이를 끌어와 자기 마음대로 휘젓는 솜씨는 웬만한 용기와 결단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지다.

예컨대, 나름의 명분이 강고했던 하토리야말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사무라이의 표본이라고 한다면, 정작 주인공인 자토이치는 정형화된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애쓴다. 병든 아내를 구하기 위해 칼을 든 하토리에게 "누가 강한지 붙어볼까?"하고 말하는 자토이치의 자유분방한 행동에서 사무라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물을 복원하면서도 그가 심어놓은 독특한 장면들은 바로 소심한 일본인들에 대한 강력한 '독설'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지. 그래서일까. 새해 벽두부터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외교 문제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꾸만 기타노 다케시의 독설이 또 한번 그리워진다.

   
▲ 자토이치와 하토리의 결투는 기타노의 독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2004 스폰지

 

오마이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228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공익신고 했더니
[생생포토] 2022 부천시 성탄트리
[생생포토] 다문화 인생 사진전 "우
경기도,"월드컵 응원, 안전대책은 도
부천시의회, 부천시 구 복원 및 일반
부천시, 제1회 고리울 마을영화제 및
부천 상도초 6학년 세계문화박람회 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제4회
부천시 항일독립운동 선열 추모하는 최
제3대 부천도시공사 원명희 사장 취임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