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평준화정책에 대하여 말이 많다. 더구나 ' 돈 많은 집 자녀들이 서울대에 많이 간다'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발표는 평준화 폐지론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평준화정책은 1974년에 중학교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을 막고, 전인 교육을 실시하며 교육격차를 줄이고자 서울과 부산에 도입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2000년 이후 일부 중소도시에도 시행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로 본 중등 교육>에 의하면, 2003년 현재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제외한 전체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56.8%의 학교와 71.9%의 학생들이 평준화 지역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준화 지역이 대부분 인구가 많다 보니 과밀학급이 많아 교육 환경은 그다지 쾌적한 편이 아니다. 게다가 비평준화 지역의 93.9%에 비해 88.8%에 불과한 진학률은 폐지론자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평준화정책이 대부분의 대도시로 확산된 것은 1980년 이전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이 정책은 답보상태로 있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소도시로 확대되었다. 30여 년 동안 대도시에서는 꾸준히 시행되었지만 평준화에 대한 논란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전개된 적은 없었다. 더구나 거대 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한 목소리를 낸 적은 전무후무하다. 갑자기 대오각성이라도 한 것인가.

사교육 열풍은 평준화 지역일수록 심하다. 이는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 교육이 매우 뛰어나거나 평준화 지역의 그것이 열악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전공과목 이외의 수업을 담당하는 상치교사의 비율은 비평준화 지역이 9.1%로 4.6%인 평준화 지역에 비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늦은 시각까지 대부분의 대도시 아이들은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사교육을 많이 받아야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도시나 시골 아이들 역시 사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엄청난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력이 있어야 한다.

혹여 폐지론자들은 학교가 수평적 교육기회 균등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학벌이나 재력을 재생산하는 기관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편식은 몸에 해롭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한 인격체를 성장하게 하는 고른 영양소의 구실을 한다.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는 영어, 수학, 국어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가정 같은 과목도 필요하고 농업도 익혀야 한다.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설립 본연의 목적보다는 명문대학 진학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고, 인문계고등학교는 물론 실업계 고등학교 마저 입시에 치중하느라 교육과정이 왜곡되는 현실은 온 나라가 학벌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평준화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학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음모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병적인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를 고치는데 지혜를 모으기보다 평준화 논쟁에 휘말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과 학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