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제도의 변화-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엊그제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눈길을 끌어보려 작심하고 붙인 제목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로 바꾸어 봐도 흥미로울 듯하다. '선거제도의 변화-누가 청와대에 들어오는가'부터 '의료보험제도의 변화-누가 수술대에 올라오는가'에 이르기까지)

1970년부터 2003년까지 33년 동안 이 대학의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학생수는 총 1만2538명이다. 그들의 가정환경과 출신지역 등을 분석한 후 3가지 정도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첫째 고소득, 고학력 부모를 둔 학생이 더 많이 합격한다. 둘째 강남학군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셋째 평준화정책이 오히려 학력세습을 가져왔다. 전교조가 셋째 항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가운데 연구팀은 "사교육비를 공교육 재원으로 흡수해 교육의 질을 다양화하고 장학제도나 입학할당제 등을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답적인 해법을 제안했다.

서울대가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주장도 있지만 풍습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이 학교는 여전히 많은 수험생과 학부형의 선망의 표적이다.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은 했지만 나는 안 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유명인사도 ‘실은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다른 사정으로 졸업은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아무튼 서울대에 합격한 이력만은 숨기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

▲ KBS-2TV <개그콘서트> ⓒ KBS 홈페이지

매주 한번씩 전국적으로 공개수업을 하는 교실이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이다. 여기에도 부의 세습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학생이 하나 있다. 이젠 그만해도 될 성 싶은데 그는 매번 자신의 이력을 줄줄이 암송한다.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엄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가 그것이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는 의자에 앉는다. 아마도 그의 부모가 그렇게 요구했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 시종(알프레도)까지 데리고 다닌다. 나머지 학생들은 천차만별이다.

'은행나무침대'의 황장군 옷을 입고 다니는 학생(박준형)이 있는가 하면 신이 내린 완벽한 몸매라면서도 자신의 몸을 끝없이 학대하는 갤러리 정(정형돈)도 있다. 자신의 위치를 번번이 망각하며 몽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깜박이(김진철), 수업의 감초이자 흉내 내기의 달인 옥동자(정종철), 교사에게 춤을 추며 다가가는 적극적인 성격의 댄서 김(김기수), 클래식음악가가 꿈인 유치하노 파바로티(윤성호), 미인대회 출전준비생(권진영), 한때 반장이었던 희극지존(이정수) 등이 동급생들이다.

수업 도중에 갑자기 들어왔다가 절규하고 퇴장하는 학생(아이스맨, 이덕재)도 있다. 한 마디로 시끌벅적한 교실이다. 이 수업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1월의 마지막 주 게시판에도 다음과 같은 네티즌(yka1225) 의견이 올랐다.

개그콘서트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학생하고 선생님이 나오는 코너를 다르게 했으면 합니다. 지난번 아이 학교 운동회 때 가 보니 그 코너를 보고 아이들이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 코너로 인해서 선생님의 자질도 떨어지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막 대하는 것 같습니다. 교육은 인륜지대사인데 애써 가르치는 선생님의 위엄을 그렇게 떨어뜨리면 되겠습니까. (중략)

그 코너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인기에만 치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략) 눈 앞에 보이는 개그맨들의 이익만 생각지 말고 먼 미래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 분의 말씀을 제작진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걱정을 하는 분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봉숭아학당의 장점도 적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봉숭아학당에서는 공부가 최고가치가 아니다. 휘발유 집어넣듯이 학습내용을 마구 주입하지도 않는다. 성적으로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도록 돕는 ‘열린 수업’을 지향한다. 교사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 가치를 구현한다. 권위는 좀 잃을지 몰라도 제자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아주 가깝다. 교사는 그날의 주제를 칠판에 적고 그것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다. 주제는 보통 다섯 글자 내외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내건 주제에 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토론한다. 이런 수업이 가능한 것은 학생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 중요한 관건이다. 봉숭아학당의 학생 수는 열 명 정도이다.

교사는 재미있는 수업, 개성을 살려주는 수업, 성적에 얽매이지 않는 수업,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수업을 지향한다. 교실이 다소 시끄러운 건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사실 이 활기찬 수업에서조차 우리 학생들의 슬픈 자화상을 간간이 발견한다.

희극지존과 옥동자의 대비를 통해서 용모지상주의에 휩싸인 사회풍조를, 세바스찬과 알프레도를 통해서는 빈부격차의 그림자를 밟게 된다. 그러나 봉숭아학당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으라고 공개하는 수업은 아니다. 이 수업을 통해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넌지시 알려 준다. 내가 만난 어느 수험생은 “이 교실의 넌센스에는 유머와 풍자라도 있지만 현실의 넌센스 교실에는 지루한 권태와 공포가 있을 뿐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교육부총리는 틈틈이 이 수업을 견학하시고 이 수업에서 하는 문제제기를 꼼꼼히 메모하기 바란다. 각자의 주특기만으로도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같은 연구결과는 뉴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