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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맨이 되고 싶다구? 그럼 사이버인이 되라!
2004년 01월 27일 (화)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한참 대학입시 전형으로 땅이 꺼질 듯한 수험생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난히 입시 열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대학입시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유와 청춘을 누리기는커녕, 마치 무슨 죄인처럼 눈치, 코치 속에 책과 씨름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조금이라도 이 길을 벗어나면 문제아 취급받기 일쑤인 현실.

'난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야 되나' 고민하면서도 욕심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땅의 모든 수험생들의 마음을 어찌 모르랴. 냉혹한 현실 속에 설도 제대로 못 쇠고 오늘도 이 대학 저 대학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후배 수험생들에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늦깎이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사회참여'를 열심히 한 청소년이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아마 내가 대학 진학할 때 그런 제도가 있었다면 '아마 난 서울대라도 갔을 것'이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그만큼 나의 학창시절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했다는 증거.

가뜩이나 예민한 고3생이었던 89년도, 하필 전교조 사태로 인한 참교육 파동이 일어나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열혈 청년들 가슴에 불을 붙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조숙했던 건지 아니면 쓸데 없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인지, 대입은 뒷전이었고 온통 머릿속에는 우리나라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조금은 돈키호테 같은 일념이 지글지글 타올랐다. 그런 날 발목 잡아 흔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대학'이라는 괴물이었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대학을 거쳐야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청소년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냐는 나중 문제고, 무조건 대학을 먼저 가야했고 대학도 자기가 원하는 학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떠나 일단 아무데라도 좋은 대학이면 들어가야 '장땡'이었다. 데모도 대학가서, 연애도 대학가서, 하고 싶은 일도 대학가서 하라니, 내 참 그 놈의 대학이 뭔지 오기도 생겼다.

난 솔직히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다. 굳이 있다면 법학과가 개중 마음에 들었다. 왜나면 폼이 나니까. 하지만 판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사실 실력, 아니 점수가 모자랐다. 실력과 점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권력 앞에 굴종하는 법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생각했다. 그래서 난 시민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었다. 비슷한 게 있긴 있었다.

사회학과! 하지만 산 사람을 물 먹여 죽이고도 '탁'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회, 수백 명을 죽여놓고도 버젓이 대통령을 하는 나라,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를 굴비처럼 끌고 가는 나라의 사회학이 제대로 되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젠장", 선심 쓰듯 알량한 자유가 주어진 더 큰 규모의 감옥인 대학도 기만스럽게 여겨졌지만 도통 가고 싶은 학과도 없었다. 하지만 군중심리라 했던가. 남들이 다 대학간다고 공부를 하니 나도 덩달아 재수 학원에 다니긴 했다.

어린 데모꾼 이영일의 점수는 나날이 추락하고 있었지만 뭘 믿고 그런건지 하여간 별로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고, 주위의 눈치 때문에 몇 군데 원서를 쓰긴 했지만 학교가 마음에 들면 학과가 엉망이었고 학과가 마음에 들면 지방으로 가야 했다. 설상가상 하필이면 내가 지원한 학과는 왠 경쟁률이 그리 높은지, '어디서 죄다 공부 못하는 놈들만 모였다'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는데 폼잡고 지성인 행세하려고 돈 써가며 멀리 간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 놓고 돈 먹기도 아닌데 무슨 로또 복권하는 것도 아니고, 영 뽑기하는 듯한 그런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었는지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아까워 죽겠다.

안되겠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이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고 주먹을 쥐었다. 가진 건 젊음밖에 없었기에 용돈은 부모님께 의지하고 소위 운동판을 따라다녔다. 사회운동에 뛰어든 나를 정의감이 강한 청년의 기상으로 이해해 준 부모님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운동에 대한 공부는 주로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웠다. 사상적 학습은 운동권 선배가 빌려 준 '해방 40년의 재인식', '껍데기를 벗고서','세계민중운동사',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등과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섭렵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3년동안 이 단체 저 단체에 학습하러 다니며 나이가 25세가 되자 경험이 쌓여 어느 정도 운동가로서의 소양과 노하우를 갖추게 되었다.

흥사단이라는 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상근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 난 NGO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려 하였으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NGO관련 서적이 많지 않았다.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행해지는 동적인 성격이 짙다고는 하지만, 이론과 사회역학적 관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한다면 더 폭넓은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마치 르네상스 시대처럼 들불처럼 타오르는 NGO의 부흥을 보면서 'NGO의 시대가 온다'라는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경희대학교 NGO대학원에서 시행하는 NGO전문가 과정도 들으며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흥사단 사무실로 날라온 경희사이버대학교 홍보 리플릿이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던져 놓았다가 심심해서 들여다 본 내용에는 NGO학과 최초 학부 과정 개설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캠퍼스의 낭만이니 대학생이 된다는 감상은 이미 없었다. 다만 NGO학과라는 것이 내 마음을 왠지 설레이게 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의 도전, 그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 사진은 2001년에 열린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초청,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워크숍 모습.
ⓒ2004 이영일
입학 후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강의 동영상 앞에 졸기 일쑤였고 학점 관리에 무지해 필요없는 과목을 듣기도 했다. 강의가 밀려 일요일에 강의를 몰아들은 적도 많았으며 교재를 못 읽어 시험에 F를 맞은 적도 있었다. 기껏해야 이메일 정도만 주고받을 정도의 수준으로 사이버 강의며 시험이며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도 영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5장짜리 리포트를 써놓고 첨부화일로 제출하는 방법을 잘 몰라 백업도 안 된 상태에서 홀라당 날린 1학년 1학기 때의 막막했던 기억은 아직도 나를 진땀 나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덕을 본 적도 많은데 한 번은, 학과 과제중에 일본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이 있어 사무실에서 몰래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고이즈미 총리가 망언을 해 선배 간사로부터 오히려 일을 찾아 한다며 칭찬을 받고 부담없이 과제를 잘 마친 적도 있었다.

사이버대학교라는 이름이 생소한 그 때에는 '사이비대학"이라며 조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사이버대학의 인기가 치솟자 주위에서 내게 문의를 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나 또한 박원순, 하승창, 남윤인순과 같은 선배 운동가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이론을 상세히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국제 NGO의 동향, 내가 접해보지 못한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을 접해 보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언제 어디서건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에서 공부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사이버대학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흥사단에서도 공부에 관련된 배려를 해 주었고 시민단체 친우들도 늦깎이 대학생인 나에게 격려와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 중의 하나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이버'라면 고작 메일을 보내고 받는 수준이었던 내가 2개의 홈페이지를 직접 디자인하여 운영하고, 인터넷 시민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불과 3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사이버 공간과 시민운동과의 관계에 눈 떠 새로운 사이버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분명 내게 있어 커다란 변화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대학을 다니는 것이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학이 목적 자체가 아닌 학문탐구와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면 시간과 장소,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욕과 용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은 경희사이버대학교 사이버 캠퍼스 전경.
ⓒ2004 이영일
학업에 있어 모든 장애는 자신의 핑계에서 출발한다. 나 자신도 내가 세운 강의 청취 기준을 잘 못 지켜 주말을 반납하고 강의를 몰아듣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고, 교수님에게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학점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것은 내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였다.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사회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시민을 위해 일한다 말인가'라고 스스로 채찍질했고 그러한 3년을 지나 이제 1년만 더 공부하면 NGO전공과 사회복지학 복수전공,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그러한 면에서 NGO학과는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비전의 달성은 단언코 없음도 난 잘 안다.

아마 지금쯤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푸르른 청춘들, 이 대학, 이 학과에 지원할까 말까 막판까지 고민하고 있을 싱그런 청춘들에게 과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사이버 대학에서 새로운 도전의 출발을 해보라고 말이다.

NGO는 나 자신과의 약속과 스스로 출발하는 참여에서 시작되듯 지금,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가라고 말이다. 적어도 <오마이뉴스>에서 이 기사를 본 사람은 이미 반은 시작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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