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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하는 짓이 이렇습니다"
정운현의 동아대해부 "볼썽사나운 김성수 '우상화'-① 동상들
2009년 09월 29일 (화) 08:40:01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 중앙일보, 오마이뉴스편집국장, 언론재단 이사를 역임했던 정운현씨가 '창간 89년'을 앞둔 <동아일보>를 향해 "나이 값도 못하는 신문" 이라는 날선 비판과 함께 편집진의 졸렬하고도 비굴한 태도, 그리고 과거 일제하 동아일보 사주와 매체의 친일 등 반민족적 면모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해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모으고 있다. 

현재 태터앤미디어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그는 20여 년 전부터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에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일문제 전문가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증언 반민특위>, <친일파 1·2·3> 등 다수의 친일파 관련 서적을 집필 출간했다.

"동아일보 하는 짓이 이렇습니다"라는 제하의 비판글을 "10회에 걸쳐 시리즈로 고발할 생각"이라는 정운현씨의 글을 본인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편집부 주

   
▲ 그간 제가 쓴 글들을 자료와 함께 모아둔 파일입니다. 제 지난날의 역사인 셈이지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먼저 하나 하자면요, 저는 그간 제가 여기저기 쓴 글들을 모두 모아가지고 있습니다. 파일로 10여 개 정도 됩니다. 그 대상은 최종 활자화된 것만 스크랩을 해두는 것이 아니라 기사 작성 때 참고한 자료도 같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나중에라도 그 때 내가 왜 그런 글을 쓰게 됐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이건 제 자랑이 아니라 저의 오래된 자료관리 습관입니다. (※ 참고로 제가 '자료쟁이' 문헌정보학과 출신이잖아요.^^)

   
▲ 정운현
어제 저녁에 집에서 무슨 자료 하나를 찾느라 모처럼 이 파일 저 파일을 뒤졌습니다. 지난 90년대 초반 <말>지에 기고한 원고인데요, 결국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말>지에 2~3개월이 한 편씩 제법 왕성하게 기고를 하던 때였죠. 당시 저는 <말>지에 시사문제보다는 주로 친일문제, 한일관계사 등 과거사 문제나 언론비평을 더러 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이메일이 대중화되지 않아 워드프로세스에 원고를 작성, 출력해서 팩스로 보내곤 했습니다.

어제 제가 뒤진 원고는 어느 분의 제보를 받고서 현장을 답사한 뒤 쓴 글인데요, 내용은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 서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취재차 과천 서울대공원엘 처음 가봤습니다) 제 글의 논지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대공원에 인촌 같은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의 동상(좌상)을 세운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문민정부 출범 후 과거사 청산이 시대적 화두가 됐었죠. 해방 50년이 되도록 경복궁에 버티고 있던 구 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것도 어쩌면 그 '바람'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 원고를 생각하면 씁쓸한 기억 한 조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마감일에 여유 있게 <말>지에 원고를 넘겼는데 그 며칠 뒤 제 원고를 담당하는 <말>지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내부에 사정이 생겨서 제 원고를 싣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 연유를 물어보았으나 자세한 것은 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렀던 시절, '보도지침'도 폭로하던 <말>지가 인촌 동상을 비판한 글 하나를 싣지 못하겠다니.... ( ※문제의 미발표 원고를 찾으면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 남산 중턱 백범광장에 서 있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 백범 동상은 전국에 4개 뿐이다.
본론을 시작하면서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냈고,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 김구 선생. 그 백범의 동상(입상, 좌상 포함하여 전신상에 한함. 흉상은 제외)이 실내, 실외를 막론하고, 또 크기에도 관계없이 전국에 과연 몇 개나 될 것 같습니까? 5개? 10개? 20개? 아니면 30개요?

아닙니다. 다 틀렸습니다. 모두 4개입니다. 이 수치는 백범기념관에 문의해서 확인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실외에 있는 것으로 남산 백범광장, 인천대공원, 경기도 구리시 구리고등학교 교정 등 모두 세 곳(이상은 모두 입상)이며, 실내는 효창동 백범기념관에 있는 좌상이 그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근대 인물로서는 첫 손가락에 백범 선생을 꼽습니다. 그럼에도 백범의 동상이 전국에 겨우 4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인촌 김성수의 동상은 과연 몇 개나 될까요? (※이 역시 기준은 백범과 같습니다. 좌상이든 입상이든 전신상(즉, 흉상은 제외)에 한하며, 또 동상의 크기도 감안하지 않기로 합니다.) 인촌을 백범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동상 개수가 백범보다 많을까요? 아니면 적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백범보다 많구요, 개수는 두 배입니다.

그동안에 나온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 인촌기념회 홈페이지 등을 검색해본 결과 제가 파악한 바로는 총 8개입니다. (※이 글에 사용된 사진은 인촌기념회 홈페이지 및 기타 몇몇 개인블로그의 사진을 활용했습니다)  이 가운데 입상은 고려대 본관 앞과 중앙고교 본관 앞 두 곳이며, 나머지는 전부 좌상입니다. 그러면 각 곳에 있는 인촌 동상을 건립 순서대로 한편 살펴보도록 하죠. 항목은 건립 장소, 종류, 건립 연도, 기타사항 순입니다.

1. 고려대 본관 앞 - 입상/1959년 5월 5일/*총 세 차례에 걸쳐 수난 겪음
2. 중앙고교 본관 앞 - 입상/1966년 6월 1일/
3. 경성방직 내 - 좌상/1978년 10월 5일/
4. 전북 고창읍 교촌리 새마을공원 내 -좌상 /1983년 8월 15일/ * 백관수 동상과 같이 있음
5. 과천 서울대공원 - 좌상 / 1991년 11월 11일 건립 / * 인촌 탄생100주년 기념 건립
6.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로비 - 좌상 / 1994년 10월 11일 건립 /
7. 고려대 인촌기념관 - 좌상 / 1994년 10월 11일 건립 /
8.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로비 - 좌상 / ---- / * 유학중 영국 방문 사진 참조

(※인촌기념회 홈페이지(http://www.inchonmemorial.co.kr/index.html)에서 자료실-사진자료실-‘동상제작’ 항목을 들어가 보면, 고려대에 또 하나의 동상(5번째 사진, 좌상)이 있는 걸로 나오는데 이건 현장 확인을 못해서 일단 빼기로 한다)

   
▲ 죄측 인촌의 고향인 전북 고창읍 교촌리 새마을공원에 서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 , 가운데 上 1991년 인촌 탄생100주년을 맞아 과천 서울대공원에 세운 인촌 김성수 동상 . 가운데 下 고대 인촌기념관에 건립된 인촌 김성수 동상 . 우측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 서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 .

인촌 김성수 정도의 인물이면 우리사회에서 유명인사인 건 맞습니다. 규모가 큰 사립대학을 하나 갖고 있고, 부통령을 지냈고, 신문사도 하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인촌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위인은 아니지요? (※어느 신문사 간부는 자사 사주를 '밤의 대통령'이라고는 합디다만) 그런데 인촌의 부음기사도 아닌, 동상 건립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보도를 함 보시겠습니까?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거의 국부(國父) 수준입니다. 박정희 시절 정책적으로 세운 세종대왕, 이순신, '반공소년' 이승복 제외하면 인촌이 동상 갯수에서 '국내 1등'입니다. 관련 기사 보도도 그렇습니다. 단신으로 '우리 신문의 사주 아무개의 동상을 어디어디에 하나 세웠습니다' 이렇게 좀 겸손하게 보도할 수는 없나요? 꼭 지면에 떡칠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까? 아래 기사는 지난 19991년 인촌 탄생100주년을 맞아 과천 서울대공원에 동상 건립 때의 <동아일보>의 보도입니다.

인촌 선생 동상 제막
서울대공원서 각계 4백 여 인사 참석
[동아일보] 1991-11-12 02면 종합 725자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제막식이 11일 오후 3시 과천 서울대공원 한마당광장에서 거행됐다. 인촌 김성수 선생 탄신 1백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채문식)가 주관한 이날 제막식에는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대중· 이기택 민주당 공동대표,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 김용식 전 외무장관, 홍성철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연택 총무처장관, 김진현 과기처장관, 김원기 민주당 사무총장, 이강훈 광복회 회장, 최영철 대통령정치특보, 강원용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현승종 한국교총 회장, 김희집 고려대총장, 시인 박두진, 기세훈 인촌기념회 이사장 등 각계인사 4백여 명과 김상만 동아일보사 명예회장, 김병관 동아일보사 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했다.

제막식은 국민의례 추모묵념 개식사 인촌 생애 보고 제막 및 명문 헌정 추모사 추모가 분향 및 헌화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채 위원장은 이날 개식사에서 "이제 대공원을 찾는 많은 후학들이 인촌 선생의 후덕한 풍모를 직접 접하고 그 어른이 민족사에 남긴 찬연한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애국단성과 유훈을 되새길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인촌 선생은 우리민족의 사표로서 인재를 결집하고 국민의 의기를 고취, 독립역량을 키워나간 대선각자였다"고 추모했다.

김 동아일보사 명예회장은 이날 유족들을 대표해 "성금을 모아 선친의 동상을 세워주신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국민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여야 당수, 전직 총리와 각료, 재계, 언론계, 학계 등 한국 땅에서 이름깨나 알린 사람들은 죄다 모였군요. 모르긴 해도 출입처 기자들 동원해서 이들 불러 모으느라 고생들 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쁘기로 2등 가면 서럽다할 이 사람들이 어찌 이 날을 기억해서 여기 다 모였겠습니까? (* 물론 이런 일은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다른 신문사에서도 매년 일상적으로 합니다. 기자들이 죽어나죠.)
 
이어서 하나 더 보시죠. 다음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4년 10월 11일 고려대 내 인촌기념관과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 똑같은 형태의 인촌 동상(좌상) 2개를 세우면서 <동아일보>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02면 종합 1923자'는 2면(흔히 종합면)에 1923자, 즉 거의 200자 원고지 10매 크기로 실었다는 얘깁니다. 행사 사진까지 곁들였으니 2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해당기사를 한번 보십시오.

-고대 기념관, 본사 충정로 사옥에
[동아일보] 1994-10-12 02면 종합 1923자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구내 인촌기념관과 서대문구 충정로 사옥 로비에서 인촌 김성수 선생상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인촌 선생의 유족과 인촌기념회, 고려중앙학원 및 동아일보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두 곳에서 제막된 인촌동상은 똑같은 형태의 청동제 작품으로 조각가 김영중씨가 제작했으며 높이 90㎝의 화강암 좌대 위에 앉아 있는 모습(좌고 1m9㎝)이다.
 
유족 측에서는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과 김상오 씨, 김남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김병건 동아일보 전무 김상홍 삼양사 회장 김상하 대한상의 회장 김각중 경방 회장 인촌 선생의 자부 고현남 여사 등이 참석했다.
 
인촌기념회에서는 기세훈 이사장 등이, 고려중앙학원에서는 고려대 홍일식 총장 김상협 명예총장, 학장급 이상 교무위원과 조홍식 중앙고 교장 한순현 고려고 교장 정영귀 중앙중 교장 김종화 고려중 교장 등이 참석했다. 동아일보사에서는 권오기 사장을 비롯한 임원 및 간부사원이 참석했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제정한 제8회 인촌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6시 동아일보사 충정로사옥에서 열렸다. 기세훈 인촌기념회 이사장은 △교육부문의 김애마 전 이화여대사범대학장 △공공봉사부문의 언더우드 일가(대표 원일한) △문학부문의 소설가 최일남 씨 △학술부문의 이기영 전 동국대 교수 등 4명의 수상자들에게 각각 상패와 상금 2천만 원을 수여했다.
 
현승종 인촌상운영위원장은 축사에서 "오늘의 수상자들은 이 상을 좀 더 빨리 받았어야 할 훌륭한 분들"이라고 밝히면서 "인촌 정신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살아온 수상자들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에 이어 열린 리셉션에서 하객으로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동아일보가 인촌 선생의 뜻을 기려 각 분야에서 좋은 업적을 남긴 분들께 이렇게 훌륭한 상을 드리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며 "특히 이번에는 우리 사회에 거울의 역할을 하신 외국인(원일한씨)도 처음으로 상을 받게 돼 더욱 뜻 깊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리셉션장에 30여 분간 머물며 동아일보의 김병관 회장 권오기 사장 현승종 전 국무총리 및 원일한 씨 등 수상자들과 환담했다.
 
한편 이날 리셉션에는 ▲정계 및 관계에서 이영덕 국무총리 채문식, 이만섭 전 국회의장,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 김숙희 교육부장관, 이웅희·· 박세직 백남치· 강인섭 의원 유경현 평통자문회의 사무총장,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권이혁 전 문교장관, 김도창 전 법제처장, 조철권 전 노동장관, 정해창 전 대통령 비서실장, 황산성 전 환경처, 김진현 전 과기처, 이수정 전 문화부장관, 김진배 전 의원, 이경식 전 공보처 차관 ▲경제계에서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 김향수 아남그룹 명예회장, 홍인기 증권거래소 이사장, 이철수 제일은행장, 장석정 석유개발공사 사장, 엄상호 건영 회장, 엄종일 건영 사장, 원철희 농협중앙회장, 김상응 삼양사 부회장, 채재억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유기정 한국경제인동우회장, 박진석 한미은행 상임감사 ▲언론출판계에서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 김성열 전 동아일보 사장, 박권상 동아일보 고문, 송건호 전 한겨레신문 사장, 이혜복 전 언론중재위원장, 안병훈 조선일 보편집인 신동호 KBS 제작단 사장, 정인량 방송개발원 이사장,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한만년 일조각 사장, 김종규 삼성출판사 회장, 조상호 나남출판사 사장 ▲학계 교육계에서 정의숙 이화학원 이사장, 송재 연세대 윤후정 이화여대· 고병익 전 서울대· 박영식 전 연세대 총장, 김병호 김석득 연세대· 송석구 동국대 부총장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한기언 서울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심치선 이화여고 정세화 이대부고 교장 송상현 서울대 신일철 고려대 박준서 연세대 김재은 황응연 백명희 장상 이화여대 이원령 중앙대 교수 ▲종교계에서 이천환 연세대 이사장 변선환 전 감신대 학장 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 ▲문화예술계에서 조경희 예술의전당 이사장 신영균 예총 회장, 시인 박재삼, 김초혜 작가, 조정내, 한승원, 윤흥길, 오찬식 송우혜, 문학평론가 류종호, 극작가 박조열, 영화배우 강수연 ▲의료계에서 한용철 삼성의료원장 한만청 서울대병원장 ▲외교사절로 토머스 해리스 주한 영국대사, 톰 화이트 영국문화원장, 게오르기 톨로라야 주한 러시아 부대사 ▲이밖에 손주환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남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박경석 대한지적공사 사장, 지연태 한국관광공사 사장, 최시중 한국갤럽 회장 등이 참석했다.

고려대 인촌기념관이나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세우는 동상이니 고려대 관계자나 <동아일보> 관계자들, 그리고 김씨 집안가족들이 모여 조촐하게 제막식 가진 후 주변이 떡이나 좀 돌리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런데 대체 이게 뭡니까? 현직 국무총리(이영덕)을 비롯해 전직 국무총리, 국회의장에다가 현직 장관(김숙희 교육부장관), 전현직 국회의원, 경제계, 언론계,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의료계, 게다가 외교사절까지.
 
이게 무슨 '국부' 동상 제막식이라도 됩니까? 그리고 이날 제막식에 참가한 사람들 면면을 누가 궁금해하기나 하대요? 그런데 그걸 지면에 다 적어놓구요. 이게 바로 지면의 사유화라는 겁니다. 이런 경우 대개 기자 한 두 명에게 행사 현장에서 참석자들 이름 받아 적는 걸 시키는 데, 이런 거 시키려고 기자 뽑았나요?    
 
한편 이 동상들 가운데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고려대 본관 앞에 서 있는 입상 동상입니다. 이 동상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철거 위기를 겪었습니다. 우선 지난 1989년 3월 당시 고려대 학내 분규 당시 고려대생들은 인촌 동상을 검은 천으로 싸서 밧줄로 묶은 후 이를 끌어내려 파묻을 생각으로 인근에 구덩이를 파두기도 했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고대 교우회와 동문 선배들이 나서서 이들을 설득, 만류하면서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죠. 두 번째는 2002년 3월 11경 누군가 이 동상에 붉은 페인트로 '김성수는 친일파'라는 낙서를 한 일이 발생했었죠.

세 번째 지난 2005년 3월의 일입니다. 당시 고려대 한승조 교수의 친일발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자 고려대 총학생회는 고려대 출신 가운데 친일전력자들의 명단을 작성한 후 이들의 친일행적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3월 11일 총학생회는 '일제잔재 청산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학내 친일인물에 대한 고발 접수 등을 통해 검증 및 조사활동을 펴는 한편 친일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 철거와 관련해 "학생과 국민 여론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때도 화는 면했지만 결국은 동상이 또 한 차례의 수모를 겪은 셈입니다.
 
그 다음 논란의 대상은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상입니다. 저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제보자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가봤더니 이 동상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 지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동상 건립을 주도한 '인촌 김성수 선생 탄신 1백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채문식(전 국회의장) 위원장은 이날 개식사에서 "이제 대공원을 찾는 많은 후학들이 인촌 선생의 후덕한 풍모를 직접 접하고 그 어른이 민족사에 남긴 찬연한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애국단성과 유훈을 되새길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인촌 선생은 우리민족의 사표로서 인재를 결집하고 국민의 의기를 고취, 독립역량을 키워나간 대선각자였다"고 말했더군요. 

   
▲ 1991년 인촌 탄생100주년을 맞아 과천 서울대공원에 세운 인촌 김성수 동상

 글쎄요,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그건 니 생각이구'요, 그럼, 인촌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대체 뭐라고 설명할 건가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냐구요? 그래서 네이버, 다음에서 '과천 서울대공원 인촌 김성수 동상'으로 검색해 봤습니다. 그 가운데 3건만 골랐습니다. 아래 링크를 따라가 보시죠.

-고려대 설립자로 잘못 알려진 친일파 인촌 김성수
-전국의 대학가는 여전히 친일파 세상?
-친일・독재잔재 드리운 어린이대공원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입니다. 제 돈으로 제가(혹은 후손이) 동상 세우겠다는 거, 딱히 말릴 재간은 없습니다. 우리 '자유 대한'에는 그런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 동상을 세우려면 보는 사람 생각도 좀 해야죠. 세상에는 더러워도 어쩔수 없이 봐야하는 '눈치'라는 것도 있잖습니까? 그런데 <동아일보> 사람들은 그런 게 좀 없는 거 같아요. 평소 하는 걸 보면요.

적어도 제 상식으로는 동상이란 주변에서 세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제 손으로 동상을 세우더라도 생가나 집무실 등 사적 공간에 좀 세우면 어떻습니까? 인촌 생가에 있는 인촌 부부(흉상)와 부친, 조부 네 사람의 아담한 동상, 보기 좋습디다.

 그러나 대학교나 대공원, 혹은 번화한 대로(大路)에 세우는 건 얘기가 다릅니다. 그럴 경우엔 그 대상인물에 대해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졸부가 광화문 네거리에 땅을 사서 자기 선친 동상을 떡하니 세운다고 칩시다.

엄격히 말하면 제 땅에 제가 뭘 하는 걸 타인이 나서서 간섭할 바는 아니죠. 그러나 이건 사정이 좀 다르죠? 시민들이 과연 그냥 보고만 있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동아>도 아마 보도할 걸요? 별 웃기는 사람다본다구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논란의 인물인 인촌의 동상 중 두 곳은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고려대 본관 앞 동상(입상)과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상(좌상)이 그것입니다. 인촌이 고려대 주인이라고 해서 교내에 맘대로 동상을 세우는 건 일종의 '폭력'입니다.

또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이들의 발걸음이 잦은 서울대공원에 세운 것도 마찬가지구요.
 
이는 고대생들이나 어린이에게 인촌을 '위대한 인물'로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셈이죠. 인촌이 친일규명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최종 결정될 경우를 생각해보면,

곳곳에 서 있는 인촌의 동상 가운데 이 두 곳은 철거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봅니다. 친일 경력자 가운데 동상이 철거된 사례가 이미 여럿 있었습니다.
 
잘 아시죠? 민족대표 33인 출신의 변절자 정춘수, 친일연극인 유치진, 친일기업인 화신 사장 박흥식, 그리고 옛 6관구사령부터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나중에 원위치) 등이 그것입니다.

정운현 님의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50765

   
▲ 고창 인촌 생가에 있는 인촌 부부(가운데 2개)와 부친(왼쪽), 조부(오른쪽) 동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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