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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옥희, 깨뜨릴 수 없는 카리스마
여자 골프계의 맏언니 구옥희를 보는 4가지 접근법
2004년 01월 20일 (화)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한국 여성프로 중에 최초 해외파. 미국 LPGA에 진출해서 첫 번째로 우승 획득. 미국과 일본 한국을 통틀어 43승째 기록. 현역 중에 최장 선수 경력이면서도 어떤 프로 못지 않은 강력한 우승 후보. 그래서 여성 프로 골퍼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인물. 팽팽하게 조여진 활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구옥희. 그 카리스마는 깨어질 수 있을까?

귀엽다, 그런데 과묵하다

"아라, 가와이네~(어머, 귀여워요)." 지난해 11월 초순 제주도에서 열린 CJ나인브릿지 클래식 마지막 날. 골프장을 벗어나 억새 무성한 길가에서 선글라스를 벗었을 때, 구옥희(48.MU) 프로의 경기를 보러 일본에서 온 열성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곧 나이 쉰을 바라보는 고참 중에 한참 고참인 선수에게 귀엽다니…. 하지만 '귀엽다'는 탄사를 듣고 따라 웃는 눈웃음, 태극을 그리면서 굴곡 지어지는 눈주름, 반짝거리는 눈빛. 그건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때의 엄숙한 모습은 더 이상 아니었다.

구옥희는 말수가 적고 과묵한 걸로 유명하다. 어쩌면 그건 지난 세월 그가 쌓아온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 골퍼로 발을 들여놓던 78년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극히 제한된 시절. 골프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던 그는 결국 골프에서 인생의 활로를 찾았다. 그리곤 캐디 생활을 하다가 프로 골퍼의 길에 들어섰다. 네 살 위인 오빠도 "어렸을 때부터 하고자 하는 것은 끈질기게 매달렸다"고 회상한다.

78년 첫 여성 프로골퍼가 된 이후 그의 인생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79년 쾌남오픈 우승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80년 한 해에만 5승을 거두고, 83년까지 6년간 16회의 우승을 거머쥐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애초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했다지만, 한국 경기에서는 더 이상 상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프로로 진출하고 바야흐로 26년. 쉼 없이 달려왔고 여성의 이름으로는 줄곧 개척자의 길에 서 있었다. 사회 진출이나 남성만 우글대는 골프계에서 프로로 살아남는 것이나, 배타성 강한 일본과 미국 라운드에서 새로운 길을 뚫은 것 모두가 구옥희에게 과묵함을 기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위해 몇 번을 만나도 말을 조심하고 극도로 아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열성팬의 표현처럼 가끔씩 드러나는 '귀여움'의 일단이 있다.

지난해 12월 제주 핀크스CC에서 한일여자골프 대항전의 주장으로 2연승을 이끈 그가 서울에 들렀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을 차례가 되었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눈을 깜빡거린다. "눈에 힘이 없어서…"라면서 말을 흘린다. 반짝이는 눈이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듯했다. 그래서 경기 때마다 선글라스를 쓰나? 주름이라곤 별로 없는 얼굴에 젊었을 적엔 고왔을 윤곽이 드러났다.

-프로 생활이 바쁘셨나요. 왜 결혼을 안하셨죠?
"안 하려 한 건 아니고, 늦게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된 거죠. 뭐." 그러더니 "은퇴하고 나서 50살에 갈지 몰라요." 멋쩍게 웃는다. 구옥희라는 단어에서 골프를 빼고 나면 20대 초반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남지 않을까?

심플하다, 그런데 강하다

지난해 줄리 잉스터가 44세의 나이에 우승을 거두자 해외 언론은 '40대의 반란'이라며 떠들어댔다. 구옥희는 이런 보도에 헛웃음을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20승 후 해외 23승(미국 1승, 일본 22승)을 올리고 있는 그는 골프계에서 '경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딸 같은 후배들을 상대로 매년 평균 1승 이상은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5월 후쿠오카에서의 버날 레이디 골프 오픈에서 1승을 추가해 22승에 상금랭킹 3위를 달리기도 했다. 재작년 4월에는 한국 마주앙 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시합 전에 인터뷰를 할 때 기자들은 으레 우승 가능성을 묻고, 그도 당연한 듯 '우승'을 얘기한다. 나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을 듯하다. 그 배경에는 골프에만 집중하는 단순한 생활 패턴이 작용하고 있었다. 구 프로가 살고 있는 일본의 맨션아파트 거실에는 가재 도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소파도 없이 식탁 정도만.

"심플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또 가끔씩 퍼팅 연습하는데 마루에 매트 깔아놓고 연습하죠. 그래서 소파가 없어요. 밥을 먹어야 하니까 식탁은 있는 거고."

-골프 말고 다른 취미생활은.
"없어요. 굳이 꼽으라면 등산 정도. 집에 있는 날도 얼마 안 돼요. 월·화요일 정도만 집에 있고 다른 날들은 지방에 있을 때가 많죠. 또 골프는 정신집중을 해야 하는 운동이라 다른 데 신경을 쓸 수 없지요." 여기선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하나의 일에 전적으로 정성을 쏟아야만 그것이 결과로 나타날 수 있어요."

한눈 팔지 않고 골프에만 쏟아 부은 인생. 단순함으로 일관된 심플 라이프. 구옥희의 저력이란 거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 하겠다는 계획은 가지고 계신가요.
"그런 건 따로 없어요. 오히려 요즘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감각이 좋으니까 2, 3년 더 해야죠."

-그 뒤라면 아마 50살이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의 구상은요.
"골프에 대한 책을 쓰거나, 지금은 머리 속에서의 구상에 불과하지만 골프 스쿨도 운영해보고 싶어요. 은퇴 후에는 한국에 돌아와 가능성 있는 후배를 길러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당장 올해는 어떨까요.
"일본에서 가장 큰 대회인 재팬 오픈에서 아직 우승해보지 못했어요. 그걸 한번 노려야죠."

-해외에서 골퍼 생활만 벌써 20년인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나요.
"84년 일본에 진출한 뒤 처음 따낸 우승, 88년 미국 LPGA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대회에서 딴 우승이죠."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되새겨보면요.
"일본에서는 알 수 없는 차별이란 것이 있어요. 시합 중에도 경기위원들이 은근히 차별 대우를 합니다. 미국 생활은 체력이 워낙에 달렸죠."

약하다, 그런데 인내한다

구 프로는 불교신자다. 지난 86년 미국 LPGA 투어에 진출한 구옥희는 육체적 정신적인 한계를 경험하면서 불교에 의탁했다. 의사소통에서부터 막혔고 넓은 미국대륙 이쪽 저쪽에서 수시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고생길이었다. 하지만 LA의 한 사찰에서 참선을 접하고부터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고, 안정도 찾았다고 한다.

-참선은 매일 빠뜨리지 않나요.
"시합이 없을 땐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하죠. 그래서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정신이 지쳤을 때 참선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벌써 선수생활 26년입니다. 그래도 계속 하시네요. 힘에 부치지 않나요.
"어떤 때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시합하러 가기도 합니다. 제가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에요. 저혈압에 시달리기도 했죠. 혈압이 65까지 떨어져 잘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어요. 그땐 '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구옥희 하면 강한 카리스마를 연상하는데요.
"몸이 너무 약해서 그걸 극복해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움직이는 힘이죠. 건강이 저의 콤플렉스였어요.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늘 다짐했죠. 내가 나를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남들에게는 강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요즘 건강이나 컨디션을 위해 하는 운동이라면.
"러닝과 스트레칭을 합니다." 80년대 초 선수 생활을 함께 한 단짝 친구 이경순 프로는 "항상 변함없이 노력하는 친구"라면서 "허약했는데도 불구하고 운동에 욕심이 많아서 다른 선수들보다 한두 시간 더 연습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구 프로는 '5년을 주기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면서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은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처해 있는 환경을 감옥이라 인정하는 자세. 인생의 좌우명이 '인내와 노력'일 정도로 그가 삶을 보는 자세는 수동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구도자 같기도 했다.

덤덤하다, 그런데 챙긴다

구옥희 프로는 한명현, 강춘자, 안종현 프로와 함께 78년 5월 프로로 데뷔하면서 여성골퍼 1세대를 형성했다. 누가 특별히 잘났다고 할 것 없이 경기 끝내고 함께 저녁 먹고 어울리던 기억이 삼삼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구 프로는 처음부터 해외 진출에 목표를 두었다.

83년 JLPGA, 86년 미국 LPGA 진출에 성공하면서 골퍼를 꿈꾸던 소녀들에게 우상이 된다. LPGA클래스A 멤버이면서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전현지 프로를 비롯한 2세대 골퍼들은 구 프로를 좇아 골퍼의 꿈을 키웠다. 혹자는 오늘날 한국 여성 골퍼들이 세계를 휘어잡는 힘을 구옥희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평한다. 남성들에게는 골프가 부유한 레저였지만, 여성들에게는 구옥희의 활약을 보면서 골프를 자아실현과 등치시켰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도 구옥희는 후배들에게 버팀목이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동생처럼 보살피던 신소라(31)와의 사이에 에피소드 한 가지. 2001년 주쿄TV브리지스톤 레이디스오픈에서의 일이다. 예선 탈락했던 구 프로는 자신의 경기를 마치고도 코스를 떠나지 않고 신소라를 따라다녔다. 그전까지도 항상 마무리에서 실패를 보던 신소라는 대선배의 응원에 힘입어 일본 진출 6년만에 트로피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다고 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에게도 관심가지고 챙겨주는 것이 쉽지 않죠." 전현지 프로는 데뷔 때부터 존경하고 있단다. "음식을 먹을 때나 몸가짐 하나에서도 전혀 흐트러지거나 빈틈이 없는 분"이라면서 "골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프로"라고 평했다.

지난 2001년 KLPGA에 입회한 조카 구현진, 구현경 씨도 구옥희 프로의 뒤를 따르고 싶어한다. 아마 이들은 한국 여성골프 3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요즘 후배들이 워낙 잘하고 있어 지난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혼자서 밟아온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르는 후배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구옥희 프로는 과묵하면서 귀엽고, 단순한 듯 강하고, 약하면서 인내하고, 무덤덤한 듯한데 다정한 속내를 가졌다.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가 그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한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줄타기 해온 인생. 그의 카리스마는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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