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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국 시의원"윈민우씨에게 건강을!"
2008년 11월 30일 (일) 00:00:00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윤병국 시의원(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지금은 '미얀마'로 이름이 바뀐 '버마'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이름은 지금은 잊혀져서 컴퓨터에도 '버마'라고 치면 자동으로 미얀마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런데 아직도 '버마'라는 나라 이름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부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만든 미얀마라는 나라 이름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버마인'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1988년 '버마'에서 있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치적 박해'  때문에 한국에 와 있으니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들의 난민신청을 '불법체류를 면하고 안정적으로 취업을 하려는 술책' 정도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 부천YMCA녹색가게 이사장이며 버마-태국국경지대 메솟 난민교육지원을 위한 부천시민 모임 박혜연 운영위원이 난민지위인정을 받은 윈민우 씨에게 축하의 꽃과 함께 겨울 내의를 선물하고 있다 ⓒ부천타임즈
한국은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했으나
유엔 난민기구의 집행이사국이 된 2000년까지도 단 1명의 난민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2001년 4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로부터 난민인정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나 1,951명 신청자 중 겨우 76명에게만 난민지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라고 하네요.

이런 어려운 난관을 뚫고 지난 9월에 '버마' 7명이 추가로 난민지위를 획득했습니다. 그나마 한국정부의 심사를 통해 받아 낸 것이 아니라 대법원까지 가는 행정소송에 이겨서 얻은 결과라고 합니다. 난민의 권리라고 해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정도여서 정치적 박해가 기다리는 본국으로 강제송환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입니다. 이 정도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최소 1년에서 5년까지 걸리는 심사기간 동안 아무런 문화적·경제적 지원도 없이 거리를 전전하는 것입니다.

   
▲ 자료사진-2005년 9월 부천 성가병원 응급실에서 신장 투석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윈민우(우측)씨를 동료들이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에서 좌로 윈민우-조모아-마웅저-쩌쩌르윈
이번에 난민지위를 획득한 사람들 중 몇 명은 부천을 근거로 활동을 해 왔기에 지난 11월 29일(토)에 이들을 축하하는 모임이 부천에서 있었습니다. 저도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난민인정자 중 한 명인 윈민우씨가 말기 신부전증으로 투병 중인데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 윈민우 ⓒ부천타임즈
미얀마에 있는 동생이 신장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그동안은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동생을 초청할 수 없었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 주 3회씩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난민지위를 획득해서 동생을 초청할 수 있게 됐지만 수술비용이 문제입니다. 총 2천여만원의 비용 중 수술비 등은 잘 해결했다고 하는데 나머지 비용이 문제입니다. 재한 미얀마 공동체 등 그의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신분인 그들이 해결하기에는 벅찬 금액입니다.   

일단은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모금운동을 벌인 모양입니다. 좋은 방법도 찾아주시고 성금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배분의 제약이 덜한 민간재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히 해 봅니다. (농협 150-01-051931 예금주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문의 이충현 사무국장 011-723-6537)

아래 글은 버마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붙입니다. 인터넷에 있는 글 두 개를 편집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한 곳도 있습니다. 원래의 필자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1948년 독립된 버마는 1962년까지 14년간 민주주의 국가였다. 군부 이전의 버마는 동남아시아에서 쌀의 최대 생산국으로 풍부한 지하자원과 곡물이 많은 자원국이었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의 국제적 식견이 있는 나라였다. 그런데 버마는 1962년 일본의 군사훈련을 받던 네윈(Mr. Nay Win)의 쿠데타로 군사독재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마치 한 해 전 1961년 만주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쿠데타로 군사독재가 시작된 한국처럼.

네윈 정권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버마의 사회주의는 군사독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지금 박정희와 네윈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군부의 악령은 아직도 아시아를 떠돌고 있다. 영국과 일본 식민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버마 군대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이후 버마 민주화가 더뎌진 원인 중 하나이다.

또한 영국과 일본 식민지배 시기에 당한 강제동원, 강제노동 문제와 집단학살 문제도 군사독재에 의해 되풀이되었다. 군사독재 정권들은 강력한 군대와 공안기구를 동원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폭력을 행사해왔고 이는 버마의 소수민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가져왔다. 사회주의 체제 이후 26년의 철권통치는 아시아의 부국이었던 버마를 1987년 세계최빈국으로 지정되게 만들었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1986년 필리핀의 민중항쟁, 1987년 한국의 6월항쟁에 이어 1988년 버마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군부의 화폐 개혁으로 인해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가운데, 1988년 3월 양곤대학 학생들이 벌인 시위로부터 군부독재 반대 시위가 시작되어 8월8일 전국적인 반독재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났다. 8888항쟁은 5·18이나 6월항쟁처럼 학생들이 주도하고 버마의 전 국민이 나선 민주화 운동이었다.

군부독재가 위기에 빠지자 9월18일 군부 내에서 쏘 마웅 장군(SAW MAUNG)에 의해 다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들은 민주화 요구를 달래기 위해 1990년 총선거를 실시하여 선출된 사람들에게 정권을 이양한다고 약속했고, 1990년 5월27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세력은 원로 정치인, 군 지휘관 출신인사, 교수, 변호사 소수민족 등 주요 민주화 활동가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민족민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해 82% 이상의 놀라운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한 것은 물론 국회의원 중 100여명 이상을 구속했다. 이후 지금까지 국회는 열리지 않고 있으며 헌법조차 제정되지 않고 있다. 민족민주동맹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89년 처음 가택연금된 이후 지금까지 총 3번의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그 기간만도 12년이 넘고 있다.

1997년 미얀마에서는 다시 대규모 시위와 군부의 탄압이 발생했다. 정부가 기름값과 가스값을 인상하자 승려들이 반대시위를 하면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다. 그러나 군부는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유혈충돌이 빚어졌다. 이런 와중에 미얀마를 덮친 사이클론은 20만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많은 문제들에 대해 국제사회의 연대를 호소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 활동가가 한국으로 연대 요청을 하는 것은 한국 속담으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 가깝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나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인식에 대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유 중 한 가지가 버마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딱히 보이는 활동은 없었다.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 또한 한국사회를 넘어서는 문제의 경우에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이번 버마 시위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형식적인 성명서에 그칠 게 아니라 군부독재 지도자들에 대한 입국 금지나 군사 교류 중단, 군부독재를 이롭게 하는 투자 중단 등 좀더 실질적인 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최근에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버마 역시 우탄트라는 분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는 개인의 영광이기 이전에 그 사회의 역량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좀더 다양한 국제사회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스스로의 역량에 맞는 책임을 인식하면서 활동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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