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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다 별들과 함께 있기에"
2008년 11월 19일 (수) 00:00:00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최미아(부천수필가협회 회장)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당신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고민스러웠습니다. 유경환 선생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고 쓰면, 제대로 아는 사람의 눈에 띄자마자 멸시받게 된다."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오래 미루어 왔습니다.

   
 
▲ 달과 매화와 새. 김환기 作(1913-1974)
 
달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그림. 처음 본 당신 그림이었습니다. 중학교 미술책이었지요. 아버지께서 그 화가가 지금은 미국에 가 있지만 앞 섬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와 한 집안 사람이고 아버지와는 같은 연배여서 고향에 있을 때는 자주 왕래를 하셨던 사이라고 하셨지요. 집에 있던(현대문학) 표지에도 당신의 그림들이 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여고시절 멋쟁이 국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낭송해 주면서 김환기라는 화가는 화가의 그림 중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잊고 있던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뉴욕에서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생각을 하면서 찍었다는 점. 그 점으로 된 그림은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보았습니다.

아버지 제사에 왔습니다. 오후 배로 들어와서 다음날 첫째로 나가면서도 짬을 내어 당신의 생가에 가야한다고 나섭니다. 당신에 대한 글을 써야한다는 이유에서이지요. 몇 년째 둘러보기만 하고 글은 되지 않아 이제는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혼자입니다. 당신의 고향 안좌도(옛 기좌도)와 내 고향 팔금도는 다리가 생겨 차로 다닐 수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호수 같은 바다를 봅니다. 당신은 그림에 유난히 푸른빛을  많이 사용했지요. 평론가들은 당신이 섬사람이어서 고향 바다와 연결을 시켰지만 여기 바다는 그런 빛이 아닌 회색빛에 가깝지요. 그래서 인지 나는 당신 그림의 청색에서 바다가 아닌 하늘을 떠올리고는 했습니다

당신의 생가에 왔습니다. 4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처음 왔었지요. 이 집이 학교 관사로 쓰일 때, 교사였던 오빠가 여기서 살았습니다. 마을의 작은 집들 사이로 서 있던 기와집은 대궐 같았습니다. 마당에 내리쬐는 쨍쨍한 햇빛을 보면서 지금은 뚜껑이 덮여있는 우물물을 퍼 올려 참외를 씻어 먹던 기억이 납니다.

   
 
▲ 김환기 선생님 생가
 
지방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더니 올 때 마다 조금씩 집이 단장되어가고 있습니다. 허물어진 담이 새로 쌓아졌습니다, 앞집을 헐어내고 배롱나무, 동백을 심고 대문 앞에 있던 표지석도 그리 옮겨져 있네요. 마당 한쪽으로는 방문객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화장실도 새로 지어 놓았군요. 당신이 일본 유학을 갔다 와서 초가를 짓고 화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곳이 저기쯤 아닐까 싶네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 태몽으로 휘황찬란한 깃발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마당에 가득한 꿈을 꾸었다지요?

훗날 당신 그림들의 색이 태몽하고 똑 같았다구요. 건넛방 툇마루에 앉아 봅니다. 아름드리 청송이 숨 막히도록 총총히 들어차 있었다는 앞산 안산(案山)이 보입니다. 당신이 "고향생각이란 곧 안산 생각뿐"이라고 했듯이 당신 그림에 나오는 산을 보면 저 안산이 생각납니다. 달이나 새를 보아도 그렇지요. 안산 위에 떠오르는 보름달이고 안산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를 그렸을 것 같았습니다. 언덕보다 조금더 큰 산. 당신이 오르내리기에 마치 알맞았다는 산, 서울은 어디메 쪽에 붙었을까 하고 바라보았다는 산입니다. 지금은 울창한 낙랑장송을 간데없고 소나무 몇 그루만이 외롭게 서 있습니다.

방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당신은 이 방에서 서울의 소설가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에게 편지들을 쓰지 않았을까요? 반생을 살고 30세에 인생과 예술을 재출발하려고 고민하고 있었겠지요. 키만 큰 시골뜨기였던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다감한 글, 정이 넘쳐흐르는 편지로 한번 만나 본 그녀에게 일 년 넘게 편지를 보냈다지요. 오랫동안 편지를 보내면서도 조혼, 이혼, 딸 셋, 이런 곡절 때문에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소극적 일 수밖에 없었다구요.  변동림은 "제가 낳아야만 자식인가. 열이면 어때? 애들은 교육시키면 된다."고 믿고 친정 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결혼을 한 김향안(金鄕岸)이 되었습니다. 화가의 아내로 30년을 산 김향안은 훗날 "지치지 않은 창작열을 가진 예술가의 동반자로 살 수 있었음은 행운 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방문 옆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습니다. 여자 아이 셋이서 실뜨기를 하는 사진입니다. 설명은 없지만 혹시 당신의 세 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은 딸들과 노모를 서울에 남겨 놓고 파리로 갔지요. 딸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했으리라 싶습니다. 파리에 있던 중에 노모까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림을 서울 지인에게 보내면서 팔아서 모갯돈을 만들어 딸에게 전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1963년 당신은 뉴욕으로 갔습니다. 10년 있다 귀국하리라 생각했는데 1973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생일, 일기에 당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60년 생일인가, 어린 시절 섬에서 쑥떡 먹던 일이 생각난다. 다사로운 날씨.' 비석하나와 나무 두 그루만 있다는 당신의 무덤. 생전에 당신이 했다는 말 ' 나는 외롭지 않다. 별들과 함게 있기에'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더욱 외롭지 않겠지요. 당신의 영혼과 예술의 동반자 김향안과 함께 있기에요.

당신이 즐겨 그린 매화 한 가지 피어있나 집 뒤란으로 가 봅니다. 한 겨울인데 철 빠른 개나리만 피어있습니다. 누군가 예술가의 생가를 방문한다는 것은 연애하고 있는 남자의 부모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지요. 아무도 없이 고즈넉한데 내내 들먹거린 마음은 그 때문이었을까요?

덧붙이는 글/편집자 주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작가는 '나무(자연)와의 대화'를 추상회화로 구현해 낸 화가다. 산과 나무·달과 구름·매화·학·사슴·조선백자 등 한국적 소재를 즐겨 그려냈다. 그가  태어난 섬 기좌도(현 안좌도)의 푸른 바다, 맑디맑은 한국의 청명한 가을 하늘, 이조 백자의 투명한 빛깔을 떠올린다.

   
 
▲ 최미아
 

최미아 작가는 (현)부천수필가협회 회장이며  2000년 '수필과 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수필집 '잔잔한 시하바다(도서출판 산과들)'는 고향과 일상, 도시에서 떠올리는 고향의 추억, 바램 등 네 가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록하였다.

첫번째 이야기 '별은 총총'은 고향의 정취를 푸근하고 능청스런 문체로 담아냈으며 두번째 이야기 '시댁이 좋다'에는 작자의 소박한 일상과 그를 통한 작은 깨달음들에 관해 실었다.

 세번째 이야기 '호야등이 있는 풍경'에서는 도시 생활 중에 만나는 고향의 흔적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네번째 이야기 '당치 않은 꿈'을 통해 앞의 글들을 감싸 안으며, 옛것의 쇠락과 도시의 발빠른 변신을 바라보는 씁쓸한 마음을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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