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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오르는 관음성지 양양을 다녀와서
양양이란 襄(솟을양)과 陽(햇볕양)을 사용하는 해돋는 곳이라는 뜻이며
2004년 01월 19일 (월)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 2004년 1월1일 아침 7시 55분 해오름 광경 ⓒ2003 양주승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사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 앉아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쯤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러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바닥에서 솟아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 하더니 
하늘에 치솟아 뜨니 가는 터럭도
헤아릴 만큼 밝도다 
혹시나 지나가는 구름이
해 근처에 머무를까 두렵구나.

조선시대 대문호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낙산사  의상대의 일출 감상을 적은 글이다.

갑신년 새해 아침.
'해가 떠오른다’는 뜻의 지명인 강원도 양양으로 1월 1일 해맞이 축제를 다녀왔다. 동해바다 의상대에서 떠오르는 웅장하고도 장엄한 태양을 보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였다. 특히 낙산사 일출이 일미인 것은 뜻깊은 역사성에 있으며 의상대사와 관련있는 의상대 해변가에서 보는 일출은 어느 지역보다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더욱이 낙산사는 원통보전, 의상대와 홍련암 등 다양한 문화유적도 곁들이고 있어 새해의 희망을 빌기에 안성맞춤이다.

양양이란 襄(솟을양)과 陽(햇볕양)을 사용하는 해돋는 곳이라는 뜻이며, 고려시대(1260년)부터 이 곳 양양의 동쪽 해안가 낙산에 동해신을 모시는 동해신묘를 설치하고 조정에서는 매년 정초와 봄, 가을에 향과 초를 보내어 동해신에 대한 제사와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하던 일출의 고장이다.

   
▲ 홍연사 ⓒ2003 양주승

조선시대 유명한 문인인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양양의 낙산사를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은 것과 낙산사에서의 일출을 감명깊게 그린 대목에서도 양양이 일출의 고장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양양이란 본래 중국 호북성 한수 연안에 있는 지명으로서 아름다운 자연과 지리적 환경이 양양과 유사하고 사람들의 품성 또한 자연의 섭리에 감모하는 기개가 잠재하여 사대부의 문헌이 찬란하고 풍습이 선미하다하여 다른 고을보다 더 훌륭함으로 양양이라 명칭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곳 현산(峴山), 한수(漢水), 무산(巫山), 록문(鹿文), 태평루(太平樓) 등의 명칭도 중국 양양의 명칭에 연유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正東方에 위치하여 우리 민족사의 시원을 열었고 8,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 바로 양양이다.

양양을 대표하는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굴 안에 머무신다는 말을 듣고 굴속에 들어가 예불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했다. 관음보살이 거처하는 곳이 인도의 보타낙가산이기에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낙산사는 신라 헌안왕 2년(858) 범일대사가 중창하였으나 몽골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세조와 예종, 인조, 정조 때 중건하였으며, 한국동란으로 또 다시 소실되어 1953년 재건하였다.

사찰 내에는 조선 세조 13년(1467) 크게 중창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칠층석탑(보물 제499호)과 예종 원년(1469)에 주조한 동종(보물 제479호)이 있으며, 사찰입구에 있는 홍예문과 원통보전 둘레에 있는 담장은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원통보전 담장 이래에 보타전, 보타락 등 중창불사로 새로운 절집과 전각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예전의 고찰다운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과연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지금의 절집 모습을 어디 상상이나 하였을까마는......

   
▲ 낙산사 홍예문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52~702)는 신라 때 대덕 고승으로서 20세에 황복사에서 스님이 되었다. 650년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가려고 요동까지 가서, 원효대사는 무덤사이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추심의 도리를 깨달아 먼저 돌아오고, 의상대사도 가던 도중 난을 당해 이루지 못하고, 그 후 66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어 타고 건너가 종남산 지상사에서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의상대사는 670년에 귀국하여 관음진신이 양양 해변굴에 상주함을 듣고 그 성용(聖容)을 뵙고자 21일을 정성껏 노력하였으나 오히려 친견을 못하였다. 그런데 문득 굴속에서 팔이 나와 수정염주를 주면서 말하기를 나의 몸을 아직 친견하지 말 것이나 단지 굴 위를 따라 올라가면 쌍죽이 솟은 곳이 있을 것이니 그곳은 나의 정상이니 일전(一殿)을 축조하라고 하였다.

또 선묘용으로부터 여의주를 받고 굴 위로 올라가 보니 과연 쌍죽이 솟아 있는지라 절을 짓고 상을 모시어 낙산사라 이름지었다. 그 후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을 강술하여 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예로부터 양양 낙산에서 새해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해에는 만사형통한다는 설이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하며, 옛 조상의 얼을 기리기 위해 양양군에서는 매년 12월 31일부터 1월 1일에 양양 낙산 해맞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 낙산사 언덕에서 갑신년 새아침의 해오름을 기다리는 부천역사문화재단 테마기행단. ⓒ2003 양주승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작년에 비해 해맞이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올해 떠오르는 해는 작년과 전혀 다름이 없었으나 분빔이 작년보다 덜해서인지 감흥은 작년보다 나은 것 같다.  우리 테마여행단은 함께 한 엽기 아줌마들이 주는 기쁨으로 새해를 더욱 즐겁게 맞이할 수 있었다.

새해를 보고 빌었던 소망 그대로 올 한 해는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뜻한 바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낙산사 해수관음상 ⓒ2003 양주승

▒  최현수 :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초등3학년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부천역사문화재단 최현수 소장님은 겨울방학중 초중등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한 역사기행과 테마여행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겨울방학 기간중 선인들의 지혜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문화기행을 함께 하실 분은 032-657-6409 으로 문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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