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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노력해봐야 동양 챔피언도 힘들어"
어느 몽상가의 권투에 대한 추억
2004년 01월 17일 (토)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만화 <더 파이팅>의 주인공 '일보' ⓒ 일본 J-studio  
 

"어째서 날 때리는 거지? 야마자와군, 약한 자를 때리면 재미있어?"

마구노우치(한국판 이름 '일보')는 하교길 낯익은 동네 불량배들로부터 이유 없는 시달림을 당한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그에게서 늘상 있는 일.

마침 훈련중인 권투 선수 다카무라 마모루가 불량배들로부터 마구노우치를 구해준다. 다카무라의 강인한 모습에 매료된 마구노우치는 강인함의 원천인 '권투'에 대하여 무한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권투 선수로 다시 태어날 자신을 꿈꾼다.

"다카무라씨! 저, 프로복서가 되고 싶습니다. 강해지고 싶어요!"

일본 유명 만화 작가 '모리카와 조지'의 원작 <하지메노 잇뽀(はじめの 一步)>를 TV판 애니메이션로 각색한 <더 파이팅> 1화의 주 내용이다. 주인공 마구노우치가 프로 권투 선수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순간.

경인방송(iTV)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5시 10분부터 방영(재방송: 오전 7시 10분)한다. 총 75편 중 10화까지 방영된 현재, 나는 공테이프에 녹화 본을 뜰 정도로 '더 파이팅'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마구노우치의 꿈, 권투에 대한 순수하고도 불같은 열정, 진정 프로가 되기 위하여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한 모습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인생의 교훈'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양념으로 '더 파이팅'의 주 배경인 압천 체육관(일보가 소속된 체육관) 중심으로 펼쳐지는 심오한 인간 관계 등 원작을 그대로 살린 드라마틱한 스토리 역시 '진국'이다. 또 원작가 모리카와 조지의 '권투'에 대한 해박함을 넘은, 가히 통달한 수준의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한 예로 마구노우치의 필살 카운터인 '뎀프시롤'은 실제 지난 1920년대 세계 헤비급을 주름 잡았던 전설적인 복서 '잭 뎀프시(Dempsey Jack)'가 고안해 낸 기술이다. 모리카와 만화작가의 권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는 부분.

(*뎀프시롤-전신을 활용, 상체를 좌우 8자형 그리며 끊임없이 회전, 동시에 전광석화 같은 양훅을 난사하는 기술이다. 앞서 상대가 가드를 올린다 해도 뎀프시롤 특유의 회전 반동을 이용한 거침없는 양훅에 상대는 점차적으로 가드가 풀리고 속수무책 당하게 된다.)

급우와의 불꽃 튀는 2연전 매치

'더 파이팅'으로 인해서일까. 학창 시절,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중학교 2학때였다. 그 연령대 아이들이 다 그렇듯, 사춘기였던 난 유난히 '욱'하는 성질 탓에 싸움질이 잦았다. 그중 같은 반 급우와 된통 치고받은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싸움질의 사유는 너무나도 사소했다. 점심 시간,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도중, 우연히 음식 반찬이 그 급우의 책상에 떨어졌다. 그는 당장 나의 멱살을 움켜잡고서 '치워!'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내 멱살 잡힌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는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일순간 아이들의 시선은 집중됐고, 자존심이 상한 난 특유의 욱하는 성질이 발동,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정작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다음날, 수업 종료 후 청소 당번이었던 나에게 살짝 부어오른 눈두덩이로 나타난 급우. 전날 맞은 게 몹시 억울했던지, 즉시 주먹을 되돌려 주었다.

순식간에 두어 대 얻어맞은 난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성난 황소 마냥 즉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성과 자제력은 이미 상실한 뒤였다. 시야가 좁아진 나의 주먹은 한없이 허공을 가르며 맥을 못 추는 반면, 그의 주먹은 내 안면을 연거푸 강타했다. 아픈 줄도 몰랐다. 다만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나의 얼굴을 쉴새없이 들이받는다는 느낌뿐.

아이들이 뒤늦게 사태진화에 나서며, 사건은 일단락 됐다. 그는 등 떠미는 아이들에 의해 마지못해 가방을 짊어지고서 교실문을 나갔다.

허나 난 아직 끝나지 않았는걸….

몹시 분하고 원통한 나머지 복도를 향해 뛰었고, 도중 책상에 걸려 넘어졌지만, 재차 일어나 그의 앞에 다가섰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씩씩~ 거침 숨을 몰아 쉬는 중 내 얼굴은 어느새 걸레 마냥 온통 피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았고), 누가 보아도 기울어진 싸움에 옆 반 아이들까지 가세, 더 이상의 싸움 진행을 방해했다. 그들로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나 보다. 당시 친구의 말대로 내 행동은 단순한 오기에 불과했다.

이 일은 삽시간 학교 전체에 퍼졌고 나는 다음날 학교를 결석해야만 했다. 눈 주위가 판다 마냥 시퍼렇게 변질(?)되고, 광대뼈 주위로 된통 부어오른 얼굴은 내가 보아도 흉했다. 친구들 앞에 낯을 들 자신이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집에는 학교를 간다고 해놓고 찾아 간 곳이 바로 권투장이었다. 과연 괴짜다운 발상이었다.

아버지는 권투 마니아

그날 권투장을 찾게 된 배경은 사실 권투 마니아이신 살아 생전의 아버지 탓(?)이 크다. 아버지를 통해 8살 때부터 권투 중계 방송을 접했던 나는 자연스레 이 원초적인 스포츠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빈틈없는 '크로스 가드'의 창시자 조지 포먼의 경기 실황 중계 방송을 보며, 또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 일대기를 전해 들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권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크로스 가드-권투에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가드는 일반적으로 양팔을 세로로 세워 수비 자세를 취하는데 반해, 조지 포먼은 팔을 가로로 엇갈려 독특하고도 빈틈없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물론 트렁크(팬츠)를 최대한(?) 올려 입음으로서, 복부의 빈틈을 최대한 줄인 경향도 없지 않은 듯하다.)

특히 1980년대 후반서부터 90년 초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시 세계 헤비급 최강자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 위성 실황 중계 방송이 있는 날이면 우리 집안은 한바탕 난리였다. 부자는 함께 모여 타이슨과 상대 선수에 대하여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할 정도로 열성이 대단했다.

물론 내기의 주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대중적 식품인 자장면이었다. 형과 내가 내기에서 패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다리를 한시간여 주물러야 했다(내기에서 지더라도 자장면은 먹을 수 있었다).

마이크 타이슨은 권투 선수로서의 실력이 진정 발군이었다. 대전에 앞서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로 상대를 지그시 노려보는 여유로움에서 일종의 살기마저 느끼기에 충분했다.

각 체급 중 가장 무거운 헤비급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경기에 들어가서는 특유의 강력한 양훅, 전광석화 같은 어퍼컷 콤비 플레이가 뛰어났다. 상대와의 접근전에서 짧게 끊어 치는 유효타는 예술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국내 권투 열기도 대단했다. 언뜻 기억에 남는 선수로는 유명우와 장정구, 문성길 등이 있다. 집념의 사나이 유명우는 이른바 맷집 싸움, 즉 치고 받는 난타전을 자주 벌였으며, 장정구는 플레이 외적으로 곱슬머리가 유독 인상에 남는다.

'돌주먹' 문성길은 아버지께서 국내 복서 중 가장 호감을 가졌던 선수로서, 매 경기 한방으로 전세를 역전하는 공격 패턴이 특징이었다. 오로지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권투 중계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난 학창 시절, 거울을 보며 '섀도 복싱'을 하는 취미가 생겼다.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입으로 쉭쉭~ 소리를 내가며 한껏 분위기를 내었다. 권투 선수 흉내를 낸답시고 급우들과 장난 삼아 주먹을 교환하다가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결국 그 친구와 싸운 이후, 무작정 권투장을 찾은 것도 동경해 왔던 권투 선수로서의 막연한 성공 신화를 꿈꾸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동양 챔피온이 되긴 힘들어..."

급우와 싸운 이후, 권투장을 찾았던 난 당시 체육관 관장과의 단독 면담을 했고, 불과 몇 시간만에 가출한 사실이 들통나고야 말았다. 관장은 실로 무서운 얼굴로 나의 집 전화번호를 캐물었고, 결국 아버지께서는 점심시간을 이용, 회사에서 권투장으로 직접 찾아 오셨다.

몹시 겁이 났다. 그러나 우려했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께서는 전날 급우와 된통 싸웠던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형이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께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무척 좋아했던 삼겹살을 사주시며 의미심장한 명언을 남겼다.

"니가 아무리 노력해봐야 동양 챔피언조차 되기 힘들어."

90년대 초반 당시, 점차 시들해져 가는 권투 열기와 척박한 환경을 염두에 둔 아버지의 감각적인(?) 발언이었다.

'더 파이팅' 1화에서 주인공 마구노우치(일보)가 다카무라 마모루에게 의욕적으로 말한다.

"프로 권투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다카무라 마모루는 진지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조언한다.

"심성이 나약해 빠진 네가 생각, 상상할 만큼 권투라는 스포츠는 결코 만만치가 않아!"

그렇다. 나는 당시 권투를 너무 만만히 보았다. 분명 좋아하는 것과 직접 실행하는 건 달랐던 것이다.

가출하다 덜미를 잡힌 나에게 권투 체육관 관장도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권투를 배워 급우에게 복수한다는 발상은 신성한 스포츠인 권투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권투를 모욕한 죄 어떻게 갚아야 할까.

요즘 권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사실 지난 70~80년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노력파'들이 지구촌 권투계 실권을 움켜 잡았지만,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해진 현대 사회에서 그 누가 단순히 맞고 때리는 것에 일생을 투자하려 할까?

더욱이 폭력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권투는 난잡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권투 선수들은 사각의 링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한다. 계체량 통과를 위하여 한동안 굶주려야 하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야 한다. 그만큼 각고의 훈련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 현 WBC 라이트 헤비급 챔피온 로이 존스의 경기 모습을 TV를 통해 본적이 있다. 천재 복서로 통하는 그는 상대와의 대전에서 가드를 아예 내린다. 경쾌한 푸드워크으로 상대의 잽을 모두 회피하며 전광석화 같은 한 방(오른손 훅)을 노린다.

자신감, 확신에 찬 플레이는 과연 애칭인 천재 복서답다. 허나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그가 확신에 찬 플레이를 하기까지의 땀방울이 대지를 숱하게 적셨을 것이다.

로이존스와 같이 국내 스포츠계에도 지난 70~80년대 한국 권투 부흥에 앞장섰던 노력파 복서들이 탄생하길 꿈꾼다. 한때 내 마음 속의 우상이었던 유명우처럼 21세기 천재복서가 한국에서도 배출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당장 13일부터 시작된 신인왕전에서 국내 권투계를 뒤흔들 유망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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