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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갈꽃섬’
2007년 12월 03일 (월) 00:00:00 박정필 시민기자 daum nogo0424

박정필(시인· 現영암경찰서 생활안전교통과장)

고향은 추억의 寶庫요, 그리움의 샘물이다. 또 멋과 낭만이 가득한 천국이다. 더불어 죽마고우를 만들어 준 정겨운 곳이다. 이렇듯 누구든 태어나고 성장한 곳을 가고파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은 고향 친구인 K와 만나서 노스탤지어에 푹 빠져 쌓인 갈증을 풀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는 다소 황소처럼 고집 세지만 순박해서 좋다. 그와 술잔이 오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내 어릴 적 추억의 줄이 끊긴 이야기를 줄줄이 이어준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험담과 비판도 맘대로 해도 다른 대로 흘러갈 걱정이 없어서 가장 편안한 존재다.

그럼 어떤 곳이 과연 고향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필자 나름대로 고향개념을 정의해 본다면 첫째, 초등학교를 졸업한 곳. 둘째, 태어난 집이 있고 부모님이 살았던 곳. 셋째, 선산이 있고 조부모의 산소가 있는 곳. 이런 세 가지 조건을 갖춰지면 고향이라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필자도 이런 고향이 바로 땅끝 앞 갈꽃섬이다. 그곳은 오래 전 조상들이 갯벌을 막아 농지를 조성할 무렵, 갈대가 무성했다하여 노화도(蘆花島)로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요즘은 갈대군락은 없어지고 조금씩 군데군데만 남아있을 뿐이다. 실로 아련한 추억만 남고 그윽한 정취는 느껴볼 수가 없다.

하지만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다 불을 지펴서 약간 익힌 청보리의 그 구수한 맛을 떠올리면 군침이 돈다. 또한 밤이면 괴괴한 동네에 밤새껏 개구리들만이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벼이삭이 노랗게 물든 논둑을 따라가면 메뚜기가 화들짝 놀라 튀어 달아나고, 하얀 눈이 내리면 썰매를 타는 재미로 하루가 저물었다. 배는 고팠지만 순수한 인정미가 넘쳤고, 그저 한가로운 분위기 속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 뒤에 이어진 산업화바람은 정체된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속절없는 세월 따라 청춘은 가고, 어느덧 인생황혼이 나도 모르게 찾아들어 허무와 공허감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차츰 열정은 식고 시력은 시나브로 떨어져 눈마저 침침해진다. 돌이켜보면 고향에서 초교시절만 보냈을 뿐 타향살이로 이어져 1년에 한두 번쯤 고향에 들락거리며 조부모와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절을 하고 추모하면서 옛일을 곰곰이 반추해 본다. 또 자식의 도리를 못해 뒤늦게 죄스러움에 눈시울을 적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아왔으나 막상 고향은 좌절과 실망을 안겨 준다. 실로 그립던 고향은 전설화되고 말았다. 밤새껏 옛이야기 나눌 정다운 벗도 없고, 손을 꼭 붙잡고 반겨줬던 어른들도 벌서 북망산에 누워 계시니 인생무상을 새삼 실감한다.

사실상 도시화된 고향은 냉랭하다. 상호간 이해관계가 대립되면 눈에 쌍심지를 켠다고 한다. 또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목소리가 커졌고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물질만능주의에 푹 빠져 사촌도 안중에 없다.

소위 신세대의 도덕윤리 부재로 위아래도 몰라보고 거친 행동은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토록 물씬 풍겼던 향토적 냄새가 메말라 버렸다. 이웃 간에도 삐걱대고 이기와 불신으로 충돌한다. 게다가 시기와 질투가 심해져 몽니가 사나워졌다. 어디 그뿐인가? 물욕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 총성 없는 황금전쟁은 인정이 넘치던 고향을 어느덧 살얼음판으로 바꿔놓았다.

언제부턴가 실개천 물소리와 송아지 울음소리마저 사라져버렸으니 어디를 가야 옛 고향의 정취를 만날 수 있을까. 이제 고향은 1960년대 낡은 흑백영화처럼 볼품없이 스쳐가고 있을 뿐이다.

   
박정필 시인은 순수문학 예술세계로 등단했으며 경찰문예대전 시 부문 입상,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 협회 회원입니다.
2006년 12월시집 <갈꽃섬의 아침>과 수필집 <오늘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를 출판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저서로는 시집 <숨죽여 뛰는 맥박>을 비롯해 <섬 안의 섬>, <꽃과 생명>, <세상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또한 부천타임즈 제정 제1회 시민기자상(2007년1월10일)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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