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무(민중의소리 편집국장)       
 

▲ 재미연구자인 김연환 박사가 촬영한 올해 5월의 <아리랑>공연 장면 ⓒ민족통신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방문 길에 ‘아리랑’ 을 볼 예정이라고 한다. 2000년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관람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의 사태전개다.
  
올브라이트는 애초 ‘놀랍다(amazing)’는 촌평을 내놓았으나 미국 조야의 거센 비난을 받은 후 “집단체조 관람은 매우 불편했던 경험”이며, “오로지 독재자만이 10만 관중이 참여하는 집단 춤 공연을 시킬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에서도 ‘아리랑’ 관람은 일종의 이념 논쟁으로 번진 셈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간극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미국은 개인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나라다. 이는 유럽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특출하게 그렇다. 반면 북은 집단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하는 나라다. ‘아리랑’과 같은 대규모 집단체조는 북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집단주의의 총화(總和)이지만, 미국적 가치관으로는 혐오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의 ‘아리랑’ 관람이 알려진 뒤부터 한국의 언론들에서도 본격적인 이념논쟁이 시작되었다. 조선일보는 "'아리랑' 공연, 꼭 보고와야 한다"는 역설적 제목의 칼럼에서 노 대통령이 “온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체제선전의 도구로 전락 시켜버리는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실감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논평을 내놨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문제성 칼럼을 쓴 기자나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전등을 켜고 따뜻한 물을 썼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말이다.

그들이 전등을 켜기 위해서는 머나먼 중동에서부터 석유를 날라온 이들과, 거대한 발전소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송전시스템 그리고 전등을 만들어 낸 공장의 노동자들까지, 적어도 수십만의 노동이 그 안에는 담겨있다. 따뜻한 수돗물도 그렇고, 심지어 오늘 아침 배달된 조선일보에도 단지 글을 쓴 기자만이 아니라 밤새 윤전기를 돌리고, 새벽 어두움 속에서 골목길을 누빈 이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제 아무리 개인주의를 찬양하는 사회에서도 집단적 노력이 조화되지 않고서는 현대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미국이나 남쪽에서 이같은 집단적 노력은 전기료나 수도료, 그리고 신문 구독료로 교환된다. 나아가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집단적 노력의 조화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무시되거나 천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매스게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2004년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매스게임 대신 행사 전문업체의 전문 출연진과 예체능 전공 학생들이 꾸민 개폐회식을 찬양했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스펙터클의 ‘효율성’ 이란다. 여기에는 “온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을 위해 군중의 눈요깃거리로 떨어진 ‘자본주의적 폭력’ 에 대한 규탄은 없다.
  
Mind의 나라
  
노 대통령이 아리랑을 관람하기 전 혹여 마음을 안돈시킬 짬이 난다면 대니얼 고든이라는 영국의 상업감독이 만든 ‘어떤 나라’ 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상영되었고, TV에서도 방영된 이 영화는 아리랑과 같은 집단체조에 참여하는 두 10대 평양소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고든 감독은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집단체조만 보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개인은 놓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집단체조 안에 개인이 있음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전체를 관통하는 울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애초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It's State of Mind’다. 우리 말로 하자면 ‘정신의 나라’쯤 될까? 돈으로 사람의 노력을 교환할 수 없는(교환하지 않기로 한) 사회에서 현대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은 어떻게 조직될 수 있을까? 고든 감독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Mind’였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아리랑’을 보면서 북을 유지하고 있는 이 ‘정신’에 대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진정으로 상호 체제를 인정한 위에서 평화로운 통일을 향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