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 Disney

원시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우리와 다른 자연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동일한 대상에조차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 문화는 자연을 극복하는 수단이지만, 원시인들에게 있어 문화는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시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과학적 세계관에 익숙해진 우리는 원시인들의 신화적 세계관을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다르게 생각했을 뿐, 결코 사고능력에 있어 우리보다 열등하지 않았다.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에 따르면, 원시인들의 사고는 과학만큼이나 엄밀한 논리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부족은 '곰'이고, 너희 부족은 '독수리'라는 토템신화는 결코 미개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신화적 동일시는 부족간의 관계를 다른 대상과의 비유를 통해 간략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즉 우리 부족과 너희 부족의 관계는 곰과 독수리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 ⓒ2004 Disney

 과학적 사고가 한 단계씩 밟아가며 지극히 한정된 현상만을 설명하는 반면, 신화의 세계는 가능한 한 빠른 방법으로 우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원시인들은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질서를 시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현대의학이 '바이러스의 침투'와 '항체의 반응'으로 설명하는 현상을 원시 공동체의 샤먼(shaman)은 '괴물의 공격'과 '영웅의 반격'이라는 신화를 통해 이해시켰다. 의사는 약물을 투여해 바이러스를 '퇴치'하지만, 샤먼은 의식을 통해 괴물을 '퇴치'했다. 대상에 대한 설명의 양식만 다를 뿐, 토템신화는 현대의 과학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우리는 문명을 통해 자연의 우위에 서게 되었지만, 또한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원시부족은 대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이는 현대 천문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연적 교감 능력이었다. 우리는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자연의 목을 조르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브라더 베어>는 이처럼 우리가 문명화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것에 관한 이야기다.

▲ ⓒ2004 Disney

먼 옛날,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리잡고 살고 있던 한 원시부족이 있었다. 그 부족의 샤먼은 나이가 찬 청년들에게 베풀 성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샤먼 타나나(Tanana)는 오로라의 형태로 나타나는 부족 주신(Great Spirit)의 뜻을 따라 각 사람에게 일생의 길잡이가 될 동물을 토템(totem)으로 정해준다. 이번 성인식에는 삼형제가 토템을 받게 되었다.

맏인 시트카(Sitka)는 '길잡이'를 상징하는 독수리를, 둘째 데나히(Denahi)는 '지혜'를 뜻하는 늑대를 토템으로 받는다. 막내 키나이(Kenai) 역시 기대에 들뜨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토템을 보고는 크게 실망한다. 그가 받은 것은 '사랑'을 상징하는 곰. 키나이는 자신의 토템이 두 형들의 것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다고 느끼며 좌절한다.

가뜩이나 실망해서 돌아온 시트카는 자신이 잡아둔 물고기가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키나이는 그것이 곰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고 주위를 지나던 곰에게 분풀이를 하기 시작한다. 화난 곰이 키나이를 향해 달려들자, 두 형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오고, 그 와중에 큰 형이 목숨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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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때문에 형을 잃은 막내 키나이는 복수심에 불타 그 곰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부족의 토템으로 정해진 동물을 죽이는 것은 신의 섭리에 대항하는 것으로 금기시 되어있다. 샤먼 타나나와 둘째형 데나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길을 떠난 키나이는 결국 그 곰을 살해하고 만다.

그 순간 부족의 주신은 키나이를 곰으로 탈바꿈시킨다. 키나이를 뒤쫓아 온 둘째 데나히는 곰 옆에 놓인 동생의 옷을 보자 그 곰이 동생을 죽인 것으로 오해하고 복수를 맹세한다. 이로써 키나이는 곰을 쫓던 입장에서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곰의 눈으로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오늘날 컴퓨터 작업은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손으로 그린 선화 위에 셀로판지를 놓고 손으로 일일이 채색작업을 하던 전통적인 방식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제작과정의 상당부분을 컴퓨터 그래픽이 대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셀 애니메이션(cell animation)'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전통적인 이차원 애니메이션(2-D animation)은 <브라더 베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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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버라이어티>지는 디즈니가 <브라더 베어>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2차원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계속해서 침체의 길을 걸어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게 <트래저 플래닛>의 흥행참패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약진과 픽사(Pixar)로 시작된 3차원 애니메이션 열풍은 디즈니 기술과 창의력 모든 면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 온 플로리다 올랜도(Orlando) 스튜디오 역시 조만간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 팀은 <뮬란>과 <릴로 앤 스티치>에 이어 <브라더 베어>을 제작했다. 올랜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작품의 공통점은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달리, 비미국적 다문화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이고, 이 전통은 <브라더 베어>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 ⓒ2004 Disney

원시사회의 고대벽화에서 아이디어를 빌어온 <브라더 베어>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아이들은 친숙한 디즈니 스타일의 그림체를 반길 것이고, 그 아이들을 무릎에 앉힌 어른들은 신화적 세계관을 통해 제시되는 친환경적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기존 '디즈니표' 애니메이션과 달리 선과 악이 이분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긍정적인 차별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브라더 베어>가 시도한 가장 새로운 실험은 상영 중 화면비율을 바꾸는 것이다. 영화는 보통 화면비율인 1.85 대 1로 진행되다가 키나이가 곰으로 바뀌는 순간, 2.35 대 1의 넓은 화면으로 바뀐다.

그 순간 황토색 톤으로 유지되어오던 색상 역시 화려한 색상으로 바뀐다. 곰을 통해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한 것이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자연은 경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 ⓒ2004 Disney

 그러나 이 영화는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별다른 개성없는 등장인물(여기서 '캐나다 낙타사슴 형제'는 예외다)에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감동을 뒤섞은 평이한 전개가 관객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탓이다. <브라더 베어>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보다 관객들이 이미 <니모를 찾아서>를 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브라더 베어>에 등장하는 매머드는 2차원 애니메이션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의 현장'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 관람해 볼 만한 영화다.

혹시 영화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옆에 앉은 어린이에게 물어볼 일이다. 틀림없이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자연과 대화하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

강인규 기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기호학으로 세상 읽기> (소명/공저)와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문학과 경계/공저)가 있다.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