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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 '예스맨'은 필요 없다
[정윤수 칼럼] 새 전무는 현장 목소리 기울이는 사람으로
2004년 01월 15일 (목)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이제서야 청명이다. 영하의 겨울 한파로 거리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무슨 봄 타령이냐구? 다름아닌 축구협회 조중연 전무 이야기다.

지난 98년 2월부터 협회 전무를 맡아왔으니 어느덧 6년이 흐른 셈인데, 그 사이 몇 차례의 파문 속에서 늘 조중연 전무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를 읊조렸다.

말인즉슨 일체의 욕심을 버리고 축구계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이었으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차범근, 허정무, 박항서 경질 파동을 비롯한 크고 작은 소란의 한복판에 늘 조중연 전무가 있었다.

이제 그가 물러난다. 협회의 상근 부회장이 되어 각지의 축구센터 건립과 유소년 축구 활성화 같은 장기 과제를 맡는다는 발표가 있으나, 말하자면 '총감독' 형식으로 뒷자리로 물러나는 것이다.

물러나는 이를 위하여 잠시 격려할 여유도 필요하다. 그에게는 그의 소임이 있었노라고. 결과만 본다면 월드컵 4강 신화에 그의 몫이 없지 않았으며, 축구계의 구조적 모순의 정점에 위치한 탓에 늘 '희생양'처럼 뭇매를 맞았노라고. 어쨌거나 '윗 분'의 기침 소리를 헤아리기보다는 축구계 전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그는 물러간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축구협회 전무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 누가 적임자며, 그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몇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축구협회 규약에 따르면 전무는 '회장을 보좌하여 사무국을 관장하고 사무를 처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임 조중연 전무 시절에 이 규약은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하였다. 물론 전무는 축구협회의 '최고 집행기관'인 이사회의 당연직 이사로서 예결산, 각급 임원 선임과 추천, 각급 대표팀 선발에 관여하게 되어 있으나 역시 고유 업무는 '사무 처리'다.

그런데 전임자는 거의 '회장 대행'이었다. 이 점 변화가 필요하다. 요컨대 신임 전무는 축구협회 각 조직에 방만하게 걸쳐 있는 전무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특히 강조하건대 전임 조중연 체제의 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의 '싱크 탱크'이자 '전략사령부' 역할을 하는 기술위원회를 일종의 거수기처럼 활용한 데서 비롯한 숱한 잡음과 오류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행정'과 '기술'을 명확히 구분하고, '기술' 부문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는, 나아가 필요하다면 규약을 바꿔서라도 기술위원회가 독립적인 기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조직 개혁'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데 합리적 의사소통의 구조를 위하여 과감한 조직 개편 작업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적임자다. 전임 체제처럼 가히 무소불위이던 그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전무의 역할이 다소 축소되더라도 동맥경화증에 걸린 협회의 의사소통 구조를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의지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맡아야 한다.

넷째, 말하자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을 과감하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 축구는 '월드컵 유치와 16강 달성'이라는 예전의 패러다임을 넘어섰다. 지금은 '수렴'의 시기가 아니라 '확산'의 시기다. 축구계의 모든 역량을 2002 월드컵에 맞춘 과거의 시계를 벗어 버리고 2002년의 성과를 축구계 각 부문으로 확산시키는 새로운 시계를 찬 사람이 필요하다.

국가 대표팀의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각급 축구 부문의 내실화와 활성화를 꾀하고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집중되어 각급 대표팀의 일취월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견인해 내는 사람이 적임자다.

다섯째, 그런 점에서 신임 전무는 귀빈석을 쳐다보기보다는 그라운드로 성큼성큼 내려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정몽준 회장의 대외 이미지를 지나치게 신경썼다. 대표팀의 경기 결과와 정 회장의 정치적 이미지를 지나치게 염려하면서 귀빈석의 기침 소리에 조바심을 내온 관행을 과감히 벗어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라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각 분야 축구인의 곁으로, 그들의 벤치와 라커룸과 그라운드로 내려가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른바 정몽준 회장의 '현대 맨'들이 틀어쥐고 있는 협회의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축구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야심찬 노력으로 올바르게 균형을 잡는, 과감한 실천 의지의 소유자가 적임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음을 미리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15일 대의원 총회를 전후로 하여 신임 전무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라건대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보다는 '환골탈태'를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이 협회를 살아 숨쉬는 싱싱한 조직으로 이끌기 바란다. 

 정윤수 논설위원은 문화비평지 계간 <리뷰>와 위성채널 스카이KBS의 축구 해설위원을 지냈습니다.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 걸쳐 기획·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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